2014년 2월 3일 월요일

알몸 수색당한 인도 외교관 사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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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미국으로 온 한 가사 도우미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고용한 집 주인에게 시급 3.11달러를 받으며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비자신청 서류에 시급이 뉴욕 주 최저임금인 9.75달러로 기재된 사실을 알았습니다. 집 주인이 조작한 서류였습니다.

그녀는 조작 사실을 신고했고, 집 주인은 체포됐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한 사건기사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지난해 말 미국과 인도 두 나라가 떠들썩해졌습니다. 집 주인의 직업이 바로 미국 주재 인도 외교관이었던 겁니다.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뉴욕 주재 인도 총영사관 소속인 데비아니 코브라가데 부총영사는 승용차로 자녀 2명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미국 당국에 공개된 장소에서 체포됐습니다. 결국 보석금 25만 달러를 내고 약 2시간만에 풀려났지만, 그녀는 체포된 뒤 수갑을 찬 채 알몸 수색을 당하고, 마약 범죄자와 같은 방에 수감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브라가데는 자신의 인권, 특히 여성 인권이 침해 당했으며, 외교관 면책 특권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항의했습니다. 이에 인도 정부가 국내 미국 외교관의 신분증 반납을 요구하는 등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서면서,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이 고조됐습니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반미 시위가 일어나 연일 성조기가 불태워졌고, 인도 경찰은 미 대사관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방호벽을 중장비를 동원해 전부 치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열흘 뒤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가사도우미의 가족들이 인도 현지에서 코브라가데를 상대로 제출한 고소장을 인용해 뉴욕 포스트가 새로운 보도를 한 겁니다. 가사도우미의 남편은 코브라가데가 가사도우미를 노예처럼 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부인이 교회에 가는 2시간을 제외하고는, 심지어 토요일에도 온종일 일을 해야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가사도우미의 딸은 코브라가데 측이 공권력을 동원해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이미 지난해 7월 미국 국무부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엄마는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항상 불행해 보였고, 코브라가데에게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코브라가데가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정작 본인은 노예를 부리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겁니다.

 이 사건을 보는 미국과 인도의 관점은 확연히 다릅니다. 미국은 최저임금과 관련된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라고 사건을 보고 있고, 인도는 외교관의 면책특권과 관련된 외교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프리트 바라라 뉴욕주 연방검사는 “코브라가데는 분명히 외교관과 영사들이 가사도우미를 착취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미국 법망을 회피하려 했다”며 “법을 어긴 인도 국민(코브라가데)의 처우에는 그렇게 분노하면서도, 왜 피해를 당한 다른 인도인(가사도우미)이 받은 처우에 대해서는 별로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말했습니다. 프리트 바바라는 특권층의 비리를 파헤쳐 명성을 쌓은 검사로 유명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도 인도계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인도에는 오랜 세월 ‘카스트’라는 신분제가 존재했습니다. 카스트 제도는 1950년 법적으로 완전 폐지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직업에 따라 상하 관계로 나눠지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결정되고, 또 그 직업은 이름에 반영돼 신분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성직자 계급이었던 ‘브라만’은 이제 종교지도자와 교수 등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 귀족 계급이었던 ‘크샤트리아’는 군인, 공직자 등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해당됩니다. 평민 계급인 ‘바이샤’는 회사원과 상인 등 일반적인 직장인, 자영업자들이고, 노예계급인 ‘수드라’는 하급 노동자, 가사 도우미 등 주인의 일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현대판 ‘신(新)카스트제도’에 따르면 코브라가데는 ‘크샤트리아’ 계급에, 가사도우미는 제일 하층인 ‘수드라’ 계급에 속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 인도의 신분제가 ‘인도 여성 외교관’ 사건을 바라보는 미국과 인도의 관점 차이를 낳은 겁니다. 인도 국민이 이 사건에서 가사도우미의 인권 침해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이유는 ‘외면한다’가 아니라 ‘공감하지 못한다’가 더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가사도우미가 겪어야 했던 일은 그들에게는, 그리고 인도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미국 사회에선 어떨까요? 코브라가데는 가사도우미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하기 위해 서류를 허위로 조작하고, 거짓 진술을 한 사람일 뿐입니다. 따라서 미국 연방대배심이 그녀를 기소한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코브라가데는 현재 미국 국무부의 출국 요구로 미국을 떠나 인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외교관 면책특권 없이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미국 당국은 코브라가데를 처벌할 수 없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최근 뉴욕에 남은 가족들과 생이별한 괴로운 심정을 털어놨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인 남편과 어린 두 딸은 현재 뉴욕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사도우미의 인권 침해한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코브라가데의 체포 과정에서 벌어진 알몸 수색 같은 연방 검찰의 과잉 조사가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인도 외교관의 인권 침해에 앞서 잊혀진 한 인도 여성의 인권 침해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과연 인권이라는 가치가 나라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무게를 지니는 개념일까요? 이 사건을 판단할 때, 우리는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동등한 가치로 존중 받아야 할 ‘인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기사 출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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