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3일 일요일

인도, 마을 규범 어겼다며 촌장이 ‘강간’ 지시하는 경우 빈번. 왜?


Associated Press
인도 수발푸르에서는 한 여성이 다른 마을 남성과 결혼하려 했다는 이유로 집단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인도 동부의 작은 농촌마을 수발푸르에서는 마을 원로들이 무슬림 남성과 결혼하려한 젊은 여성을 집단강간하라고 지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힌두교 마을인 수발푸르의 촌장 등 12명은 20세의 이 여성을 움막으로 끌고가 집단강간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후 피해 여성과 그녀에게 청혼했던 남성은 밤새 나무에 묶여있었으며, 다음날 원로회는 이들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13명의 마을 남성들이 피해 여성을 집단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도 시골지역에서는 마을 지도자들이 법을 무시한 채, 전통적인 사회규범을 강요하는 이런 식의 인민재판이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2012년 12월 인도 뿐 아니라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뉴델리 버스 집단강간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넘게 흐른 지금, 수발프르 사건은 당시 제정된 여성보호법이 뿌리깊은 문화적 저항에 부딪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 여성은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범인들은 현재 감옥에 갇혀있지만 피해 여성의 가족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한다. 피해 여성의 모친은 “딸의 인생이 망가졌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게 나을 뻔 했다”고 한탄한다.
빈곤한 인도 시골지역에 사는 수억명의 여성들에게 있어서 보수적인 마을 지도자와 원로회는 누구와 결혼할지, 어떤 옷을 입을지 등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력이다.
정부의 인가를 받은 지역정부와는 별개인 이런 비공식 원로회는 법적으로 마을에서 일어나는 분쟁 등을 판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불법적으로 부과하는 벌칙은 벌금, 추방, 강제 결혼, 강간, 사형 등 다양하다.
인도여성위원회(NCW)의 샤미나 샤피크는 “도시지역은 변하고 있지만 시골지역은 수백년 뒤처져있다”고 말한다. 마을 원로회가 “여성의 권익 신장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설명이다.
2012년 우타르 프라데쉬 주의 한 마을 원로회는 중매결혼만을 허용하며 결혼하지 않은 독신여성은 휴대폰을 소유하거나 청바지를 입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자체 발의했다. 중앙정부 관리들은 이를 비난했다. 당시 인도 내무장관이었던 P. 치담바람은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일방적 명령”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원로회들을 단속하는 데 고전해왔다. 마을 주민들이 외부인에게 입을 열지 않기 때문에 원로회의 행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로회가 범법을 일삼는다는 보고가 확산되면서 인도법위원회는 2012년 이들을 단속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의회에서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남성들 역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라자스탄 주 경찰에 따르면 한 남성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3개월 동안이나 감금당했으며 심지어 수간(獸姦)까지 당했다고 한다. 기혼 여성과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였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여성단체들은 여성이야말로 원로회의 가장 흔한 타겟이며, 원로회가 시골지역 여성들의 삶을 어느 정도까지 지배하고 있는지는 수발푸르 사건이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웨스트벵갈 주 수발푸르는 가장 가까운 도시인 콜카타에서 12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약 30 가구가 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경찰서는 13마일 떨어진 라브푸르에 있다.
피해 여성의 경찰 진술서에 따르면 지난달 어느날 오후, 피해 여성의 남자친구가 그녀의 집을 찾아와 해질 무렵 청혼했으며 여성은 청혼을 수락했다.
하지만 남성의 모습을 마을 촌장이 보면서 순식간에 그가 힌두교 여성과 결혼하려 한다는 소식이 퍼졌다.
그날 밤 늦게 마을 원로들은 여성의 집에 들이닥쳤다.
촌장은 처벌로 주민들에게 그녀를 “마음대로 농락하라고 지시”했다. 촌장 발라이 마르디 역시 강간에 참여했다.
경찰과 목격자들에 따르면 다음날 아침 원로들은 마을광장에 모여 이들 남녀에게 벌금 800달러를 부과하기로 판결을 내렸다.
아이들까지 대동한 수십명의 주민들이 이 광경을 지켜봤다. 사건 발생 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인터뷰한 주민 중 일부는 그런 강간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자고 있어서 몰랐다고 대답했다. 대다수는 원로회의 벌금부과형이 적절했다는 반응이었다.
중년의 주민 랄 키스쿠는 “그들이 저지른 죄에 비하면 관대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간사건은 피해 여성이 꾸며낸 것일지도 모른다며 “다른 마을 놈과 관계를 가지면 어떻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피해 여성은 오빠가 자전거에 태워 라브푸르 경찰서로 데려갔다. 경찰은 그녀의 블라우스가 찢겨 있었고 여기저기엔 멍든 자국이 있었으며 속옷에는 정액이 묻어있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촌장을 비롯해 범인 13명을 체포했다. 현재 이들은 구금 중이지만 아직 아무도 기소되진 않았다. 인도에서는 경찰이 사건기록부를 준비하는데만도 2개월이 넘게 걸리는 게 보통이며, 이 기간동안 용의자들이 기소되는 건 드물다.
경찰은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범인들의 변호인 딜립 고쉬는 이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거라고 주장했다.
사건을 담당한 데바시스 고세 경감은 지역 주민들이 경찰을 찾아오는 건 흔치 않으며 대대로 전해내려온 보수적인 도덕규범에 따라 마을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자신의 권리나 마을 밖 세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어떤 사안에서든 마을 원로들의 말이 곧 최종판결인 경우가 많다.”
인도 법 하에서는 강간 피해자 본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이름을 공개할 수 없게 돼 있다. 피해 여성은 모친을 통해 인터뷰를 거절했으며, 모친은 자신과 딸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도시지역 경찰은 최근 늘어난 성범죄 신고건수를 언급하며 공적논의로 인해 도시지역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지를 강조했다. 특히 2012년 델리 사건 이후 더욱 그렇다는 것.
델리의 경우 지난해 강간 신고건수는 1,500건 이상으로 2012년의 706건보다 두배 이상 증가했다. 성희롱 신고건수는 5배나 급증했다. 델리 경찰은 이는 범죄율 자체가 늘어나서가 아니라 여성들의 신고의지가 강해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골지역은 얘기가 다르다. 수발푸르와 같은 행정구에 사는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유사한 사건이 두 건 이상 발생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수발푸르에서 멀지 않은 마을 고브라에서는 10대 소녀가 다른 마을 남자와 데이트했다는 이유로 강간을 당했다. 그 마을 촌장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잡아뗐다.
지역 경찰은 아무도 그런 사건을 신고하지 않았으며 피해 소녀의 가족은 마을을 떠났다고 잘라말했다.
또다른 사건은 수발푸르에서 50마일 떨어진 마을 바탈라에서 발생했다. 2년전에서야 전기가 들어온 시골 마을이다. 2010년 8월 어느날 당시 15살이던 수니타 무르무르는 무슬림 남자친구를 데리고 마을에 왔는데 원로들이 집에 들이닥쳐 자신을 끌어냈다고 말한다. “나보고 남자친구를 잊어버리라고 했고 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10명 조금 넘는 수의 남성들이 촌장의 지시라며 그녀의 옷을 모두 벗긴 후 마을을 행진하게 만들었다.
“난 비명을 지르며 도와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단 한명도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쳐다볼 뿐이었다.”
무르무르는 마을 세 곳을 그렇게 돌고나서 벌거벗은 채로 근처 산에 내버려졌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무서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주민들 다수가 휴대폰으로 당시 장면을 찍었고 동영상 중 하나는 사건이 발생했던 달에 지역 언론보도에 등장했다. 결국 경찰이 사건을 조사해 11명의 남성을 체포했고 성추행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남성들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일부 주민들은 수개월째 그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현재 사건은 계류 중이다.
마을 주민 몇 명은 무르무르의 말이 맞다고 말했지만 증언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 여성은 “모두가 이 일을 알고 있지만 연루되고 싶어하진 않는다. 내일이라도 우리 가족이 타겟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도 마을 원로회들은 한동안 법적 난국에 빠지기도 했다. 2006년 인도 대법원은 다른 마을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한 커플에 관한 판결에서 마을 원로회가 스스로 법을 집행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이런 관행은 가차없이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유사한 2011년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인도 사회에서 간과되는 이런 야만적이고 구시대적인 관행을 근절할 때”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도 시골지역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비영리단체 ‘아스티트바’의 레하나 아딥 대표는 “법 자체도 바뀌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길 기대하는가”라며 “원로회를 단속할 실질적인 법이 없기 때문에 교육받지 못한 인도인들은 마을 지도자들의 말을 무조건 따른다”고 말했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돌리고 추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따돌림당할까봐 무서워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옆마을로 피신해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는 수발푸르 피해 여성의 가족 역시 보복을 두려워한다. 오빠 중 한 명은 “돌아가면 사람들이 우릴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가족은 여성과 결혼을 약속했던 남성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
피해 여성의 모친은 딸이 경찰에 신고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이제 누가 우리 딸과 결혼하려 하겠느냐?”고 흐느꼈다.
<기사 출처 :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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