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영원의 강 갠지스, 영원한 사랑 찾아 떠나는 길목이었을까


바라나시의 갠지스강. 갠지스강은 힌두어로는 ‘강가’라고 한다. 힌두교도들은 신성한 강으로 여기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흘러 델리 북쪽으로 향하며 전체 길이는 2460㎞이다.
갠지스 강변 라고빈스 힌두 사원에서 두 마리 물고기 형상의 부조를 만났다. 날개 달린 사람을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마날리의 마누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바라나시의 골목길은 미로 같다. 어지간한 초행자는 숙소를 나서면 한 번쯤 길을 잃게 된다. 바라나시의 골목길은 소와 사람의 통행에 구분이 없다.
매일 해질녘이면 갠지스 강변에서는 ‘뿌자’가 행해진다. 강의 여신께 바치는 불꽃과 향이 두 시간가량 밤하늘에 피어오르고 나면 제사는 끝난다.


바라나시로 향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히말라야산에서 발원한 강물이 우타르프라데시주(州)에서 다시 남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갠지스강에 합류하는 가가라강을 따라 파트나(Patna)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우기와 현지 교통 사정으로 강을 따라 여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나는 아요디아에서 남동쪽으로 200㎞ 떨어진 바라나시로 발길을 돌렸다. 바라나시도 2000년 전 아요디아의 여인 허황옥 공주가 김해로 향하는 길목에 지나쳤을 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바라나시는 온 거리가 물 천지였다.

삼륜택시인 ‘오토릭샤’가 호텔로 향하는 동안 어떤 골목에서는 흰 소가 답답하게 길을 막았다. 또 다른 골목에서는 마주 오는 오토릭샤와 마주쳤다. 그래도 나를 태운 릭샤꾼은 이곳의 전문 드라이버답게 미로 같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잘도 빠져나갔다.

물이 발목까지 빠지는 큰길로 나오자 맞은편에서 오는 자동차 바퀴에 소와 개 등 동물 배설물이 뒤섞인 누런 물이 튀었고, 누런 물이 내 엉덩이와 허리까지 적셨다. 이것이 바라나시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바라나시의 골목길 풍경은 천태만상이다. 짙은 향내와 온갖 악취,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의 배설물들이 뒤엉킨 골목길은 바라나시를 처음 찾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계단을 따라 호텔 레스토랑이 있는 옥상으로 올라가니 정갈해 보이는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안락 의자였지만 내 궁둥이 하나 의지하기에는 충분했다. 허리춤까지 오는 담벼락에 기대어 보니 황토 빛깔의 갠지스강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강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길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좁고 복잡한 바라나시의 미로 속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디로 발길을 옮겼을까?’

아요디아를 떠난 나는 도통 길을 찾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바라나시의 골목길을 서성거렸다.

아유타국을 떠나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험난한 길을 선택한 허황옥 공주가 지나간 길을 나는 제대로 따라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남기고 갔을 법한 단서라도 찾고 싶었다. 어느새 난 오래된 건물만 보이면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부터 두 마리의 물고기를 찾아 유명한 바라나시의 화장터 건물들을 살피고 싶었지만 물에 잠겨 강변으로는 다가갈 수 없었다. 길이 갈라지는 골목길 지점에서는 두리번거리면서 손바닥에 침을 튀기며 방향을 잡기도 했다.

복잡한 신작로에서는 쨍쨍거리는 경적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인파에 떠밀리면서 나도 모르게 갠지스강으로 향하는 큰길을 걷고 있었다. 골목길을 벗어난 대로변에 있는 오래된 라고빈스(Ragovinth) 힌두 사원에서 두 마리 물고기 형상의 부조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날개 달린 사람을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마날리의 마누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였다.

흐르는 땀에도 한쪽 눈을 질끈 감고 기분 좋게 셔터를 눌렀다.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성스러운 도시’로 잘 알려진 바라나시도 2000년 전 아유타국의 공주가 지나갔던, 영원한 사랑을 향하는 길목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됐다.

“라마 라마 사테 헤(라마신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시신 한 구가 허공에 들려져 골목길에서 서성이는 내 곁을 지나가고 있다. 앞서 가는 이가 선창하고 뒤따르는 이들이 합창을 하며 짙은 향내를 풍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의 영원으로 가는 길목을 열어주기 위한 화장용 땔감을 실은 수레가 뒤를 따랐다.

바라나시는 힌두교 7대 성지 중 하나이자 화장터로 유명하다. 향내 짙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만나는 갠지스강의 화장터. 힌두교인들은 이곳에서 시신을 화장하기 전 “라마 라마 사테 헤”를 외치며 인생의 마지막 길도 라마신과 함께한다.

‘라마야냐’의 서사시대로 힌두교인들은 라마의 행동을 좇는 것을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수행으로 여긴다. 마지막 망자를 화장터로 보내면서도 ‘라마’를 부른다. 골목길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동안에도 또 다른 망자의 가는 길을 축복하는 라마를 부르는 곡소리가 들린다. “라마 라마 사테 헤.”

천상에서 흐르며 정화의 역할을 해오던 강가의 여신이 시바신의 머리를 타고 흘러 내려 강이 되었다는 갠지스강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에 맞춰 갠지스강변에서 매일 밤 ‘뿌자’가 행해진다는 말을 듣고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뿌자는 신에게 올리는 제사의식을 말한다.

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삶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며 축복인 곳이다. 내가 강을 찾았을 때는 우기로 매일 비가 내리고 바라나시 시가지까지 물이 범람하고 물이 빠진 후에는 누런 침전물을 남기고 있었다. 갠지스강의 범람으로 생기는 침전물은 토질을 활성화시켜 매우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강물이 범람하는 것도 축복으로 여긴다.

나는 강변에서 제사의식을 올리면서 신과 마주보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향이 하늘로 피어오르고 오묘한 고동 소리와 함께 갠지스 강변에서의 신비로운 제사인 뿌자가 시작됐다.

갠지스강의 강가 여신에게 뿌자를 행하는 이들의 몸짓은 한결같이 경이롭고 신비롭다. 다섯 번에 걸친 다른 형태의 의식이 치러지고 두 시간 동안 불꽃과 향이 밤하늘을 피어오르고 나서야 제사는 끝났다.

숙소에서도 신들의 나라답게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주문을 외는 소리가 골목을 타고 들려왔다. 밤하늘에 제사를 모시는 향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바라나시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사흘 안에 바라나시를 떠나지 못하면 영원히 떠나지 못한다는 말처럼 나도 어느새 이곳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내 온몸의 어리석은 피와 살들이 이곳을 그만 떠나고 싶어했다. 이곳 바라나시에서 공허함도 허망함도 없었다. 정신이 피로할 정도의 진지한 철학적 관념이 머물지도 않았다.

이제는 250㎞ 남동쪽으로 떨어진 보드가야로 떠나야 한다.

2000년 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그녀는 이 길을 밟았을까? 아무래도 길을 직접 보고 땅을 밟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결국 보드가야로 향하는 기차표를 찢어버렸다. 2000여 년이 흐른 길이지만 우마차가 다니고 돌담이 쌓여 있던 길목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싶었다. 뒤척이는 밤이 지났다. 해가 뜨기 전에 달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출발을 서둘렀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매번 잃어버려 서성이곤 했던 바라나시 골목길을 이제는 능숙하게 빠져나왔다. 새벽녘 골목에는 몇 마리 개들이 늘어져 있었고, 아직도 단잠 속에 빠진 이들의 코 고는 소리도 들렸다. 나를 태운 택시는 새벽길을 가르며 보드가야를 향해 달렸다. 

글·사진=남기환(사진작가·여행 칼럼니스트)
<기사 출처 : 경남신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