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정치 명문가 네루-간디가(家)의 4세대인 라훌 간디 통일진보연합(UPA) 부의장이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드리웠던 암살의 그림자를 떨쳐내고 3대에 걸쳐 총리를 지낸 가문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지 여부가 주목된다.
43세인 간디 부의장은 지난 2004년 연방 하원 총선에서 34세의 젊은 나이로 정계에 등장했다.
상대후보를 10만표차로 누르고 당선됐음에도 그에 대한 인도 언론의 시각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출마했던 선거구가 증조부이자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와 아버지 라지브 간디, 어머니 소니아 간디 등이 정계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던 네루-간디가의 텃밭인 아메티였기 때문이다.
정치 명가 후계자의 등장에 인도 여론의 관심은 집중됐지만 이름값에 비해 이룬 성과는 크지 않았다.
총선 압승과 달리 자신이 이끌었던 2차례(2007년, 2012년)의 아메티가 포함된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주의회 선거에서 UPA는 403석의 의석 중 22석, 28석 확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1월 정계 입문 9년 만에 집권여당의 부의장에 오른 그에게는 '국가를 위해 한 일은 별로 없지만 좋은 집안으로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오른 행운아'라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아버지 사망 후 외국을 전전긍긍한 간디보다 국내에 남아 어머니를 도운 여동생 프리얀카 간디가 지도자로 더 적합하다는 여론도 조성되고 있다.
현재 UPA 의장으로 있는 어머니 소니아 간디가 외국인이라는 점도 콤플렉스로 작용한다.
소니아는 지난 1991년 남편인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서거 후 당을 재정비했지만 이탈리아 출생이라는 점을 공격받아 2004년 총리직을 고사했다.
간디가 이런 어머니의 비호아래 부의장직을 얻게 됐다는 비판은 떨쳐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 간디는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당의 총선 승리와 자신의 유약한 이미지를 깨기 위해 가문의 저주처럼 여겨지는 '암살' 정면돌파 카드를 꺼내들었다.
간디의 할머니이자 네루 전 총리의 딸 인디라 간디 전 총리는 지난 1984년 시크교도인 경호원에게 암살당했으며 아버지인 라지브 간디 전 총리는 1991년 지방 유세도중 폭탄테러로 사망했다.
간디는 지난 24일 인도 북부 라자스탄에서 연설을 통해 "할머니와 아버지가 암살당했으며 나 역시 언젠가 살해될 수 있다"며 "그러나 나는 이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간디는 인디라 간디의 사망일을 1주일 앞둔 이날 "할머니의 피가 한 방에 튀었고 내 친구들의 피가 또 다른 방에 튀었다"며 "나는 그들과 매우 가까웠으며 그들 중 한 명은 내게 배드민턴을 가르쳐주기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간디가 언급한 친구들이란 인디라 간디를 암살한 시크교도 경호원 사트완트 싱과 빈트 싱으로 그는 "이들을 향한 분노에서 자유로워지는데 15년의 시간이 걸렸다"며 할머니와 불편한 관계였던 시크교도와 더 이상의 갈등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지 언론들은 수줍은 성격의 간디 부의장이 선조들의 발자취를 마지못해 따르는 것을 극복하고 비극적인 가족사를 선거전략으로 활용할 만큼 달라졌다고 호평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인도인민당(BJP)이 국민들 사이에서 갈등의 불을 지른 것 말고 무엇을 했느냐"며 야당인 BJP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사람들을 분노에 휩싸이게 하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 화를 잊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며 이제 우리는 국민들에게 다가가 그 불을 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 2001년 구자라트주(州)에서 2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폭동을 용인한 BJP의 총리 후보인 나렌드라 모디를 겨냥한 것이다.
당시 구자라트주 수상이던 모디는 무슬림과 힌두교도의 무력 충돌로 힌두교도 5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힘에 의한 모든 작용은 반대 방향으로부터 같은 크기의 힘을 가진 반작용을 받는다"는 뉴턴의 제3법칙을 인용, 힌두교도들의 복수를 사실상 인정했다.
이에 힌두교도들은 무슬림을 대량 학살했고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모디의 입국 비자를 거부하고 있다.
간디는 모디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을 가리켜 "BJP는 그들의 편협한 개인적인 이익 때문에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도 뭄바이의 도박사들은 모디가 간디를 꺾고 총리가 될 확률을 더 높게 책정하고 있다.
간디가 '귀공자'의 이미지를 벗고 컴플렉스를 극복함으로써 모디의 거센 도전을 딛고 4대에 걸쳐 총리직을 거머쥘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사 출처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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