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8일 월요일

추락하는 TV 시장…이젠 드라마도 태블릿으로 본다

“평판 TV 출하량이 2년 연속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IT 전문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옛 디스플레이뱅크) 홍주식 책임 애널리스트의 얘기다. 

TV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TV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모양새다. TV 시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분석도 잇따른다. 선진국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며 신흥 시장도 예상만큼 수요가 확대되고 있진 않다는 게 근거다. 향후 TV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도 뚜렷하지 않아 보인다. 전반적으로 글로벌 TV 시장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올해 5월만 해도 월간 전 세계 FPD(평판) TV 출하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 상승하며 회복 조짐을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6월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데 이어 7월에도 6.3% 줄어들면서 2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아이서플라이 측은 TV 출하량 감소세가 최소 10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2년 연속 TV 시장의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된다고 전망했다. 

TV 시장 최고급과 저가로 양극화 

이 같은 시장 상황이 TV 제조업체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몇몇 업체들은 이미 백기를 들었다. 독일 TV 제조업체 뢰베는 지난 10월 1일 파산을 신청했다. 뢰베는 주로 고가 제품을 생산했던 명품 업체로 뢰베의 평면 TV 판매 가격은 최고 5000유로(약 720만원)에 달했다. 일본 파나소닉은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 TV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한때 PDP TV 시장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며 PDP 종가를 자처하던 파나소닉은 내년 3월 말까지 생산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다른 부서로 이동시킬 계획이다. 

TV 시장 세계 1, 2위를 다투던 국내 업체들도 전년과 비교하면 TV 관련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 2분기 LCD TV 매출은 52억3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63억8000만달러)에 비해 무려 18% 줄어들었다. LG전자도 같은 기간 3.1% 감소한 32억81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TV도 PC와 같이 사양 산업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관련 업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TV 시장이 침체의 길로 접어든 원인 중 하나는 스마트폰·태블릿PC 등 모바일기기 화질이 향상되면서 이들 모바일기기가 TV의 일부 기능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TV를 두지 않고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이른바 ‘제로 TV 가정’이 점차 늘고 있다. 미국 최대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즌은 “버라이즌 IPTV 시청자 중 TV가 없는 가정이 이미 20%를 넘어섰다. 적어도 미국에서 20인치대 미만 TV 시장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북미와 서유럽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태블릿PC 전용 방송 콘텐츠가 급증하면서 가정 내 두 번째(2nd) TV 수요 또한 줄고 있다. 거실에 두는 40~50인치대 대형 TV를 제외하고 각 방에 두는 20~30인치대 TV 수요는 점점 모바일기기로 넘어오는 트렌드다. 

교체 수요가 줄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TV는 기본적으로 휴대폰과 달리 교체 주기가 길다. 2년이면 바꾸는 휴대폰과 달리 최소 3~5년에서 최대 10년이 지나도 TV는 잘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LCD TV, PDP TV 등 평판 TV의 등장으로 평균 교체 주기가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기존 브라운관 TV와 비교해 평판 TV는 휴대성은 물론 디자인, 화질 측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TV 업계가 2000년대 들어 매년 10% 이상 고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이 같은 교체 수요가 2010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 TV 시장은 ‘런던올림픽’이란 최고 호재에도 불구하고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4%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지난해 TV 판매량 감소는) 2000년대부터 이어진 평판 TV로의 대체 수요가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로, 시장 판도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이를 대비해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새로운 형태의 TV를 선보였지만 소비자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국내 TV 업체들은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해 평판 TV에서 한 단계 진화한 TV 개발에 고심해 왔다. 삼성전자는 인터넷 연결 기능을 추가해 각종 IT기기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스마트 TV’를, LG전자는 ‘3D TV’를 선보이며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TV 업체들의 이 같은 전략은 지금까진 사실상 실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IPTV 시대가 열리면서 굳이 스마트 TV를 구입하지 않고도 스마트 TV처럼 TV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3D TV도 마찬가지다. 소화할 만한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에서 3D TV는 무용지물이다. 불황으로 지갑을 꽁꽁 닫고 있는 소비자들이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기존 평판 TV와 큰 차이도 없는 새로운 TV를 구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신흥 시장마저 위축세로 돌아선 것 또한 TV 업체들에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인도는 올해 초만 해도 평판 TV 시장이 25%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전망이 빗나갔다. 브라질은 경기 둔화 여파로 TV 수요가 감소세다. 오직 중국만이 TV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싼 가격으로 무장한 중국 TV 업체가 모든 과실을 거둬들이는 중이다.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7월 글로벌 TV 시장에서 중국 6대 브랜드(창홍, 하이얼, 하이센스, 콘카, 스카이웍스, TCL)의 시장점유율은 6월 대비 5%포인트 상승한 20.4%를 기록했다. 2위 업체 LG전자(14%)는 물론 1위 업체 삼성전자(19%)를 능가하는 수치다. 

TV 시장 축소, 신시장 확대 미비,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 등으로 인해 세계 1, 2위를 자랑하는 국내 TV 업체들도 뼈를 깎는 노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TV 시장은 최고급 TV와 각 방에 벽걸이 형태의 패널만으로 TV 기능을 하는 최저가 형태로 크게 양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국내 업체들이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선 TV의 고급화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한 TV 부품업체 대표의 얘기다. 

전문가들은 UHD(초고해상도) TV나 곡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와 같이 높은 품질의 패널 생산과 각종 반도체 기술을 접목한 제품을 통해 국내 업체들이 TV의 ‘고스펙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UHD TV 시장은 향후 성장 잠재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집중해 새로운 시장 창출에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UHD는 약 830만화소로 현재 주력인 풀HD(약 200만화소)보다 해상도가 4배 선명하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UHD TV 시장 규모는 지난해 7518만달러에서 올해 29억6900만달러로 성장해 내년에도 91억6400만달러 규모로 3배가량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UHD TV 시장 확대를 위해 최근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곡면 OLED TV도 관심을 모으는 아이템이다. 곡면 OLED TV는 화면이 시청자 쪽으로 오목하게 휘어져 어느 위치에서 시청해도 동일한 고화질을 제공하며, 화면 왜곡을 줄이고 몰입감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55·65인치 곡면 UHD TV를 공개했다. LG전자 또한 77인치 곡면 UHD OLED TV를 공개했다. 

TV 안에 탑재되는 반도체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기존 TV에도 디스플레이 패널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탑재됐지만 최근엔 연산 기능을 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TV에는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기기와 비교하면 다소 낮은 성능의 칩을 탑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모바일기기와 TV의 반도체 성능을 동일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부문에서의 강점을 살려 TV의 ‘고스펙화’를 본격 추진한다는 전략”이라고 귀띔했다. 
<기사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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