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금융위기 5년만에 된서리 맞는 美 투자은행…"이제 시작…"

금융위기 5년 후 미국 대형 투자은행들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2008년 경제 위기의 단초가 된 파생상품 부실 판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을 얻어맞고 있다. 아직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 당국은 현재 최소 9곳의 투자은행을 상대로 주택담보대출증권(MBS) 부실 판매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美 은행 MBS 판매 “사실상 손해 본 장사”

JP모건의 경우 주택담보증권(MBS) 부실 판매 때문에 투자자들에게도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줘야 할 처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기관투자자들이 JP모건을 상대로 MBS 부실 판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최소 57억5000만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JP모건은 최근 미 법무부와도 MBS 부실 판매 혐의 때문에 130억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간신히 합의했다. 합쳐서 MBS 부실 판매 때문에만 모두 200억달러에 육박하는 돈을 내놓게 생겼다. JP모건의 MBS 판매액이 330억달러 수준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각종 송사 비용으로 220억달러를 제하고 나면 사실상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

미국 2위 대형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같은 혐의로 60억달러를 벌금으로 내게 생겼다. 지난 20일 “미 연방주택금융청(FHFA)이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60억달러를 내기로 협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BoA는 570억달러의 모기지 상품을 부실 판매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 “시작일 뿐, 美 은행들 줄줄이 철퇴 맞는다”

JP모건과 BoA의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 소식이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아직도 시작일 뿐이라는 분석이 많다. 23일 FT는 “씨티그룹, UBS, 웰스파고,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모건스탠리 등 최소 9곳이 미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며 “민사상 책임을 모두 묻는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며, 결국 JP모건처럼 거액의 벌금을 내는 방향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연방정부가 지난해 MBS 부실판매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 팀까지 꾸린 결과라는 설명이 따랐다.

지금의 수사가 금융위기 이후 상당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봐주기식 수사’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5년이나 지난 뒤에 부실 판매 의혹을 어떻게 입증하느냐는 얘기다. ‘대마불사(大馬不死)’는 여전히 되풀이 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제 미 경제도 숨통이 트였기 때문에 과거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을 본격적으로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양적완화 축소를 거론할 정도까지 경제가 회복했고 금융 시장 상황이 금융위기 전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제는 대형 은행에도 벌을 내릴 여력이 생겼다는 얘기다.

◆ 월가 “해도 너무 한다” vs 워싱턴 정가 “아직 멀었다”

하지만 미 금융권 관계자들은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JP모건의 수난도 워싱턴 정가에 밉보여 본보기로 전락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골드만삭스 게리 콘 대표는 23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JP모건이 지금 겪는 상황은 안타깝다. 우리도 그런 상황을 겪어봤다. 어떤 기분일지 잘 안다”며 동정했다.

일부는 미 사법당국이 벌 줄 상대를 잘못 택했다는 얘기도 한다. 이들은 JP모건의 MBS 판매액 중 80%가 금융위기 당시 쓰러진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 시절에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든다. JP모건은 2008년 당시 미 정치권과의 교감 속에서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인수했다. 당시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이 판매한 부실 자산까지 지금 JP모건이 무리하게 뒤집어 쓰고 있다는 것.

금융위기의 책임이 정부에도 있는데도 투자 은행에만 모든 탓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CNN머니는 “당시 미 정부가 패니매와 프레디맥을 암묵적으로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먼저 지적한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도 그의 저서 ‘폴트 라인’에서 “미 정부의 암묵적 지원이 위험성 높은 시장의 판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는 “월가의 탐욕은 여전하다”며 “이번만큼은 금융 범죄에 대해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투자은행들은 여전히 돈이 되는 곳이라면 무조건 진출해 꼼수를 부려 시장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JP모건에 부과된 벌금 130억달러가 세상을 화들짝 놀라게 했지만, 벌금 중 일부를 세금공제받고 나면 실제 내는 벌금은 훨씬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로이터는 24일 “벌금 중 일부는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세금 공제 받을 수 있는 벌금 세부 항목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번 벌금 합의로 엄청난 피해를 본 것 같지만, 실은 그 정도로 물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 금융당국과 사법당국은 월가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엄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되새기고 있다. 대표적인 월가 강경 규제론자인 메리 조 화이트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지난 7월 취임 이후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공개 석상에서 수차례 강조했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도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CEO가 벌금에 합의하면 형사 소송을 불기소 처분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끝내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출처 :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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