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NGO ‘팍스 로마나’ 세계 사무총장을 지낸 한국계 여성 로렌스 곽(51·한국명 곽은경)의 일터는 전쟁과 폭력이 난무한 현장이다. 첫 출장지였던 시에라리온을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마다가스카르, 케냐, 라이베리아, 콜롬비아, 페루, 멕시코 등 대부분 가난한 제3세계국이다. 그곳에서 로렌스 곽은 정치·사회·경제적 폭력에 시달리는 가난한 이웃에게 인권과 평화를 전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만났다.
로렌스 곽은 대한민국이 정치 격변기인 1980년대에 친구들과 함께 학생 운동을 했다. 당시 한국 가톨릭학생전국협의회 전국 부회장까지 맡았다. 그러나 학교 졸업과 사회인이 됐다. 운동하는 선후배와 동기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후방에서 물심양면 도와주는 것뿐이었다. 한창 일을 하고 있던 사회생활 2년차 때 그는 국제 NGO 팍스 로마나 국제가톨릭학생회(IMCS)로부터 ‘아시아 대표’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프랑스어를 하나도 몰랐던 로렌스 곽은 스스로 ‘무모한 도전’이라 생각하며 고사했다. 그러나 거듭된 주변의 권유가 그를 움직였다. 그렇게 1987년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제가 하는 일은 훌륭한 인재를 평화와 인권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치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현지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일할 현지 리더를 찾는 거죠. 한번은 프랑스에 온 조용환 변호사님이 ‘자신의 얼굴에 책임지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골라내는 것이죠”
그가 몸담은 ‘팍스 로마나’는 국제 연대 활동을 하는 NGO다. 현지에서 힘들게 활동하는 인권운동가들을 초청해 유럽에 현지 사정을 알리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1년에 한두 번은 현장으로 직접 방문을 나가고, 그곳에서 대중 홍보 활동을 펼친다.
“전쟁과 가난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이에요. 전쟁 나면 결국 남은 사람들은 여성뿐이거든요. 자원은 없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돈은 벌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거기에 남편이나 같은 동네 사는 남성들한테 성폭력까지 시달려야 해요. 인도 불가촉천민 계급의 달리트 여성들의 연대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해요.”
전쟁과 폭력에 맞서는 인도·콜롬비아 여성들
▲ ©여성신문
달리트 여성 연대는 한 여성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시작됐다. 계급차별에 대해 난상 토론을 벌이다 곽은경이 “가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구석에 있던 한 여성이 “남편의 성관계 강요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대답했다. 이어 다른 여성들도 서로 눈치를 보다가 동의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어요. 그 후 10년이 조금 안 돼 그곳을 다시 찾았는데 그때 토론을 계기로 여성들이 연대를 만들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더라고요. 성관계를 강요하는 남편의 행위를 성폭행으로 규정하고 피해 여성 집 앞에 가서 침묵시위를 하는 등의 활동을 했는데 신기하게 남편들이 변하기 시작했대요. 여성들이 힘을 모으니 마을이 달라진 거죠.”
이어 로렌스 곽은 콜롬비아 메들린에 있는 ‘여성들이 만든 평화의 길’을 소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과 폭력’이라는 증오의 유산을 끊어낼 여성들의 용기 있는 연대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길에 선 여성들은 ‘이 길에서 만큼은 평화롭게 살자’로 외치면서 평화와 인권을 수호하고 있어요. 마약조직이 들끓어 치안이 최악이라고 알려진 콜롬비아 메들린에 만들어진 길이에요. 이 운동은 메들린에 거주하는 여성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어요. 전쟁으로 희생되는 무고한 시민들을 위해 여성들이 용기를 낸 거죠.”
“평화의 길에 선 여성들은 ‘이 길에서 만큼은 평화롭게 살자’로 외치면서 평화와 인권을 수호하고 있어요. 마약조직이 들끓어 치안이 최악이라고 알려진 콜롬비아 메들린에 만들어진 길이에요. 이 운동은 메들린에 거주하는 여성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어요. 전쟁으로 희생되는 무고한 시민들을 위해 여성들이 용기를 낸 거죠.”
NGO 활동 25년 만에 처음으로 안식년을 맞이한 그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내년부터 다시 국제연대활동의 엔진을 가동할 그에게 꿈을 물었다.
“제 인생철학은 ‘가치와 신념을 배반하지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하자’예요. 25년 간 해온 국제연대활동을 밑천 삼아 제네바에 있는 국제 NGO 컨설팅을 해보고 싶어요. 한창 현장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의 시행착오도 줄여주고, NGO끼리의 연대를 모색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
한편, 그는 25년 NGO 활동 경험 토대로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남해의봄날)를 최근 펴냈다. 책에는 그가 국제연대활동가 자격으로 방문했던 인도, 시에라리온, 마다가스카르,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에서의 활동 내용이 담겨 있다.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물론 그곳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특히 현지 여성들의 연대 활동이 눈에 띄게 많이 있어 눈길을 끈다.
<기사 출처 : 여성신문>
<기사 출처 :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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