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8일 금요일

선거 선진국

선거제도는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진화돼 왔다. 고대 그리스의 귀족회의나 신라시대 화백회의처럼 특정계급 내의 선거행위는 있었지만 보통·평등·직접·비밀의 4대 원칙이 적용된 민주적 선거제도는 19세기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시작됐다. 선거제도는 각 나라의 특성이나 역사적 전통에 따라 다양하게 치러지고 있다. 국민의 3분의 1이 문맹(文盲)인 케냐의 경우 지난 2005년 독립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개헌안 투표의 용지에는 바나나와 오렌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글씨를 모르는 유권자가 많기에 찬성하면 바나나에, 반대하면 오렌지에 기표하게 했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선거국가인 인도는 유권자만 7억1000여만 명에 달하고 82만 개의 투표소에서 보통 한 달 동안 선거가 치러진다. 투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에 한동안 지워지지 않는 청색 잉크를 발라 표시했다.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각 주(州)마다 다른 투표방식 때문에 논란이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 2000년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은 대선에서 플로리다 주의 선거 결과가 발표되지 못해 한 달 동안 대통령 당선자를 결정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해오던 천공식 투표방식 때문에 대량의 무효표가 생겨 개표가 늦어지다 결국 대법원의 결정으로 부시가 당선됐다. 네덜란드에서는 1인 3표까지 대리투표를 허용하는 특이한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1948년 5·10 제헌의회 선거 때 처음으로 만 21세 이상 남녀 모두가 1인1투표를 실시했다. 당시에는 미 군정(軍政)이 선거관리를 할 정도로 자체 관리 능력이 없었지만 65년이 지난 올해 세계 120개 국가가 참여한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사무국이 인천 송도에 설치되고 초대 사무총장을 맡는 쾌거를 이뤘다. 앞으로 각국에서 파견된 300여 명이 상주하게 될 사무국은 후발 민주주의 국가에 선거제도를 지원하고 선거제도 표준안도 만들 예정이다. 선거 역사가 짧은 한국이 사무국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제도에서 세계에 모범이 될 만큼 급속히 발전했고, 선진국과 후발 민주주의 국가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1989년 동해시 국회의원 재선거 때 출마 후보 5명 전원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것을 계기로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통합선거법이 제정되면서 선거제도가 선진화된 영향이 컸다. 문화 한류(韓流)에 이어 선거제도 한류를 기대해 본다.
<기사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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