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8일 화요일

美 신문 “이젠 동영상 전쟁!”

“구체적인 것은 나도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앞으로 20년 내로 종이신문은 사라질 것이란 점이다.” 미디어 황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아마존닷컴 CEO 제프 베조스의 말이다. 워싱턴포스트를 매입하기 10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독일 신문 자이퉁(Zeitung)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미국 미디어 상황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베조스의 말이 과장이 아니란 사실을 안다. 미국 신문의 99.99%는 현재 경영난에 빠져 있다. 미국 신문업계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글로벌 시대와 21세기 초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한순간에 터진 두 개의 강펀치 앞에 신문 업계의 버블이 한순간에 터졌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쇼크에 따른 경제불황과, 모바일과 태블릿PC 보급으로 집약되는 IT혁명이 신문 업계 추락의 주범이다. 광고가 격감한 데 이어 독자 수도 급하강하고 있다. 1985년 미국 내 신문 유료구독 부수는 6300만부였다. 26년이 지난 2011년 4400만부로 추락했다. 이 기간 미국 인구가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구독 부수는 거꾸로 30% 이상 하락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그 어떤 어려움 속에 있다 해도 해결책은 반드시 있다. 2007년 1월 뉴욕타임스 회장 아서 슐츠버그가 선조(先祖)의 고향인 이스라엘 신문과 한 인터뷰 속에 그 답이 들어 있다.
   
   “5년 후에도 우리가 종이신문을 찍어낼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어떤 상황이 닥친다 해도 내가 믿는 것이 하나 있다. 종이신문을 찍어낼지 말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I don’t care either.)”
   
   슐츠버그 회장의 말은 행간(行間)의 의미를 통해 되새길 필요가 있다. 종이신문의 종언(終焉)이 뉴욕타임스 역사의 끝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종이신문으로서의 뉴욕타임스의 운명이 끝날지 모르지만, 다른 형태로 진화해서 21세기 세계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 수장의 진의(眞意)이다.
   
   슐츠버그의 인터뷰 이후 6년이 흐른 지금 뉴욕타임스는 아직도 종이신문을 찍어내고 있다. 예측이 빗나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뉴욕타임스 뉴스 서비스의 현황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뉴스 전달 방법이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졌다. 종이신문만이 아니라 컴퓨터, 모바일, 태블릿PC 등 입체적 방법으로 디지털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가을부터 디지털 구독자 수가 종이신문을 압도하게 된다. 현재 뉴욕타임스의 종이신문과 디지털 뉴스의 구독자는 각각 73만과 113만(지난 3월 31일 기준)에 달한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상위 25개 종이신문을 기준으로 할 때 디지털 뉴스가 종이신문을 압도한 유일무이한 신문사가 뉴욕타임스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읽는 신문이 아니라 ‘보고 듣는’ 디지털 매체로 진화한 상태이다.
   
   디지털로 변신한 뉴욕타임스가 현재 가장 힘을 쏟는 부분은 동영상 분야이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불어닥친 경영난을 해결해줄 출구 중 하나가 동영상 뉴스이다. 온라인 비디오 애드(Online Video Ad)라 불리는, 동영상 앞뒤에 붙는 15초짜리 광고가 경영난을 타개해 줄 대안으로 등장했다. 보통 CPM으로 표현되는 동영상 광고의 1000회 방영 단가는 2012년 기준으로 평균 17.5달러 선이다. 1회 광고 방영 단가가 1.7센트인 셈이다. 온라인 광고 관련 IT업체 eMarketer(www.emarketer.com)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디지털 광고 시장의 규모는 425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온라인 동영상 광고 시장의 규모는 약 10%인 41억달러 정도이다. 아직 적은 규모지만 성장률을 보면 경이롭다. 매년 50% 이상 급신장하고 있다. 3년 뒤인 2016년의 동영상 광고 시장 규모는 8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에 이어 미국 신문 대부분이 동영상 분야에 올인하는 이유이다.
   
   동영상 광고가 늘어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유튜브 세대 등장이 첫 번째 원인이다. 움직이는 화상(畵像)이야말로 믿을 수 있는 근거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사진이나 활자를 통한 광고에 무심하다. 동영상만이 광고다운 진짜 광고이다. 둘째는 광고주 스스로가 온라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닭과 달걀의 관계겠지만, 유튜브 세대가 있기에 광고주의 관심도 변하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현대자동차는 미국 내 TV 광고 가운데 5%를 동영상 쪽으로 돌렸다고 한다. 현대자동차의 주된 고객은 도시에 사는 청장년층이다. 동영상 광고는 신문사만이 아닌 구글·야후에도 제공된다. 기존의 신문사가 동영상 광고시장을 독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광고 단가나 광고 내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뉴욕타임스가 정상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뉴욕타임스는 자체 제작한 동영상을 통해 그날의 주요 뉴스와 함께 오피니언·패션·여행·음식·교육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내보낸다. 하루에 제작되는 동영상은 보통 6개 정도이다. 연방정부 업무중단(Shutdown)에 들어갔던 10월 1일자 동영상은 전부 8개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의 상황에 관한 것이 3개, 네덜란드의 패션스타일, 영화 소개 등이었다. 모바일과 태블릿PC에는 이미 제작된 것을 포함해 보통 12개의 동영상이 제공된다. 동영상 길이는 3분 내외다. 중요한 기자회견의 경우 1시간 가깝게 전부 내보내기도 한다.
   
   뉴욕타임스 동영상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Op-Doc’이다.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오피니언(Opinion Documentary)의 약자이다. 문자 그대로 주관에 기초한 짧은 다큐멘터리이다. 매일 닥치는 뉴스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중후장대형 예술작품이다. 종교·교육·환경·예술·동성애·의료·실버세대 등에 관한 테마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12월 시작한 이래 일주일에 하나 정도 선보이고 있다. 중후한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게(?) 동영상 광고도 30초짜리를 붙인다. 동영상 길이는 보통 5분 내외지만 30초짜리 만화에서부터 25분 초대형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9월 말에 선보인 평등 교육 관련 프로그램은 뉴욕의 명문 학교에 들어간 흑인 소년의 어제와 오늘을 다루고 있다. 무려 13년간 흑인 소년을 따라다니며 취재한 동영상이다. 이념으로서의 흑백 문제가 아니라 품위를 지키는 인간으로서의 분투기가 동영상 전체에 투영돼 있다. Op-Doc은 종이신문만이 아니라 동영상 저널이란 장르에 있어서도 뉴욕타임스를 세계 최고로 만드는 증거이다.
   
   동영상 뉴스는 뉴욕타임스에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이 가장 먼저 추진했다. 2007년부터 간헐적으로 동영상 뉴스를 내보냈지만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지난해 6월부터이다. 편집국에서 관장하는 동영상 뉴스가 아니라 아예 WSJ Live라는 독립부서를 만들어 동영상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HD스크린을 기본으로 하면서 소셜미디어 기능을 추가하고 생방송과 장기적인 특집프로그램을 보강하는 식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WSJ Live에는 특별한 스타가 없다는 점이다. 잘생기고 말 잘하는 유명한 스타를 중심으로 한 뉴스가 아니다. 무명의 기자들이 등장해 열심히 취재한 기사만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 WSJ Live이다. 뉴욕타임스도 똑같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시청률에 집착하는 기존의 TV방송국과 차별화되는, 질적으로 우수한 뉴스를 통해 승부를 내겠다는 언론 본연의 자세라 볼 수 있다.
   
   WSJ Live는 디지털로 전달될 수 있는 모든 디바이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자체 앱에서부터, 애플TV를 시작으로 Hulu·Xbox·Roku 등 무려 30개의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간다. 그 어떤 신문사나 TV방송사도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수의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WSJ Live는 미국만이 아니라 월스트리트저널 지국이 있는 전 세계에 배포된다. 전 세계에 방영되는 WSJ Live 수는 한 달 평균 2500만건(지난 6월 기준)에 달한다. 동영상 제작은 영어로 이뤄지지만 2~3년 내로 현지어 자막기능을 첨가한 뉴스가 전송될 전망이다. 한국어로 자막이 달린 WSJ Live 뉴스가 곧 닥친다는 의미이다.
   
   양적·질적으로 볼 때 뉴욕타임스와 WSJ Live는 동영상 뉴스의 양대 산맥이다. 두 신문사의 동영상 프로그램은 다른 신문사가 제작하는 동영상의 모범답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두 신문사 비디오 프로그램의 특징을 보면 돈에 주목하는 월스트리트저널, 교양과 인문 지식에 무게중심을 두는 뉴욕타임스라는 식이다. 신속 정확한 속보성 뉴스도 있지만 평소에 알아둬야 할 정보와 지식에 관한 내용도 적지 않다. 단발성 뉴스에 주목하는 한국 신문사들의 동영상 프로그램과 크게 구별되는 부분이다.
   
   WSJ Live는 이름에서 보듯 지구의 ‘화수분(貨水盆)’에 해당하는 월스트리트발 뉴스를 기본으로 하는 정보지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라는 너무도 단순한 목표에 맞춘 매체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2000명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훑으면서 돈의 냄새를 포착하고 그 향방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제작되는 동영상은 하루 평균 20여개에 달한다. 뉴욕타임스와 비교할 때 3배가 넘는다.
   
   방송 전문가라면 신문사가 동영상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데 대해 부정적일 수 있다. 활자와 영상은 엄연히 다른 장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비디오 카메라를 이해하지 못하는 신문기자들에게 한 수 가르치려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면 구도나 리포트 방식도 엉망이라 비난할 듯하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특별한 전제하에서나 가능하다. 신문이 기존의 방송 스타일을 그대로 모방하려 할 때에나 고려할 수 있는 생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존의 TV를 흉내 내는 식의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만이 가능한 독특한 스타일의 동영상 저널리즘을 창조해 시청자에게 제공한다. 지난 6월 24일부터 시작된 ‘스타트업’(WSJ Startup of the Year) 시리즈는 WSJ Live의 창의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스타트업 시리즈는 수천 개 회사들과의 공개경쟁을 통해 선발된 24명의 기업가(entrepreneur)를 주역으로 한다. WSJ Live가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 프로그램으로, 3~4분짜리 동영상을 통해 개개의 기업이 어떤 아이디어를 통해 돈을 벌려고 하는지를 소개한다. 이들을 측면에서 지원하고 아이디어를 개발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40여명의 글로벌 멘토(Mentor) 군단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보장하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21세기형 비즈니스 전사(戰士)들이다. 버진(Virgin)항공사 대표 리처드 브랜슨, 인도 타타그룹의 회장 라탄 타타, GE 마케팅 수석이사 베스 콤스톡, 아메리칸 온라인(AOL) 창업자 스티브 케이스, 최근 엔터테인먼트 기업가로 변신한 가수이자 댄서인 엠시 해머(MC Hammer)가 멘토 군단 리스트에 올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글로벌 멘토군단을 24개의 기업가와 직원들에게 연결해 준다. 스타트업 기업가와 멘토 군단의 미팅은 스카이프(Skype)를 통한 화상회의로 진행된다. 미팅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돌직구식으로 진행된다. 엠씨 해머는 화상미팅에 들어선 순간 “당신이 시작한 일이 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20초 안에 답해보라”고 말한다. 미팅 과정이 전부 동영상으로 기록돼 월스트리트저널을 타고 전 세계에 전달된다. 멘토는 특별히 제작된 다른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동영상을 본 사람들로부터의 반응이나 코멘트를 모아 스타트업 기업가에게 전달한다. 24개의 스타트업 기업 가운데 누구에게 투자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과도 공개된다. 음악용 이어폰과 IT보청기에 특화한 아시우스 테크놀러지스(Asius Technologies)는 1913표의 지지표를 얻어 24개 스타트업 기업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지난 10월 1일 기준) 투자 대상 1위로 오른 기업은 방송이 끝나는 11월 중순 ‘올해 최고의 스타트업 기업’으로서 투자금을 받게 된다.
   
   스타트업 시리즈는 일방적인 전달이나 보도가 아니라 출연자·멘토·시청자를 종과 횡으로 넘나드는, 소셜미디어 스타일의 비디오에 해당한다. 기존의 TV라면 24개의 스타트업 소개에 그치겠지만 리얼리티쇼(Reality Show)와 소셜미디어 스타일로 이어가는 과정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입체적 프로그램이 제작될 수 있다. TV가 만들기 어려운 새로운 장르의 비디오 저널에 해당한다.
   
   지난 5월 초 미디어 전문가 사이에서 화제가 된 월스트리트저널 내부 이메일이 하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2000명 기자를 동영상 뉴스 체제에 맞추려는 내용으로,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외부에 유출됐다. “비디오는 우리가 전달하는 뉴스 가운데 한층 크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영상 출연은 저널리스트로서의 수준만이 아니라 방송 출연(On-Air Presentation)으로서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시청자들은 (동영상에 나오는) 당신을 주목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남녀 관계없이 6층에 있는 분장실에 가서 얼굴 화장과 함께 머리도 다듬고 단정하고 전문가다운 옷차림을 갖추기를 바랍니다. 정 바쁘면 한 번이라도 얼굴에 분칠을 할 것을 권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기사가 주목받기를 바랄 겁니다. 번들거리는 이마가 주목의 대상이 되길 바라지는 않겠지요?”
   
   메일 내용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대부분이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재(才)와 색(色)을 모두 갖춰야 하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의 의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칠한 탤런트 노릇이 싫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가거나 노조에 항의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979년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란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한 세대가 흐른 지금, ‘비디오(동영상)가 신문과 신문기자를 살린다’라는 패러디송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기사 출처 :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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