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7일 월요일

'세계 1%' 논문 서울대 약리학 6위 … KAIST 공학 33위



10년간 급성장 … 한국 대학 연구역량 '한강의 기적'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기적이다.”(한국연구재단 안화용 성과확산실장) 지난 10년간 한국 대학의 연구역량 발전상에 대한 평가다.

 중앙일보는 전국대학평가협의회와 함께 2003~2012년 전 세계 22개 학문 분야의 과학기술(SCI)·인문사회(SSCI) 국제논문 1365만 건을 분석했다. 2003년 한국의 국제논문은 총 2만2759편(전 세계 논문의 2.1%)으로 세계 14위였다. 지난해엔 총 5만4315편(3.4%)에 달해 인도·호주·러시아·네덜란드를 제치고 세계 10위에 올랐다.

재료과학 분야 100위권 안에 6개대

 다른 학자들의 후속 연구에 많이 인용되는 ‘피인용 상위 1% 논문’ 11만 편을 22개 학문 분야별로 분석한 결과 국내 대학의 연구 수준이 세계 정상급에 가장 근접한 분야는 약리학·독성학이었다. 서울대가 세계 6위, 미국 하버드대가 1위로 나타났다.

 재료과학 분야에서도 국내 대학들의 선전이 눈에 띄었다. 100위권 내에 서울대(11위)·KAIST(35위)·포스텍(48위)·성균관대(55위)·연세대(56위)·한양대(57위)가 포진했다. KAIST는 공학 분야에서 세계 33위에 올랐다.

 반면 해외 대학과 경쟁력에 큰 차이를 보이는 분야도 있었다. 국내 대학·연구기관에서는 우주과학 분야 상위 1% 논문을 한 편도 내지 못 했다. 정신의학·심리학 분야에선 서울대·연세대 외 다른 국내 대학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천종식 교수 논문은 1000번 인용돼

 피인용 수가 많은 국내 학자들의 논문 중엔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것도 많았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천종식 교수가 2007년 발표한 세균 분류학 논문은 지금까지 전 세계 학자들의 후속 연구에 1000번 이상 인용됐다. 미생물학 분야의 국제논문 중 피인용 수로 따졌을 때 상위 0.01% 내에 든다. ‘생물정보학’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천 교수는 컴퓨터 데이터를 활용해 세균을 분석한다. 그가 개발한 ‘세균 바코드’는 특정한 유전자 염기서열에 반응하는 바코드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해 환자들이 어떤 세균에 감염됐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세균 감염 환자에 대한 치료법을 개선했다. 천 교수는 “국내 연구 환경도 세계 정상급 대학에 견줄 만큼 나아지고 있고, 연구자들의 역량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숭실대 화학과 김자헌 교수가 2003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미국 학자들과 공동 연구한 신물질 합성에 관한 논문도 피인용 수 상위 0.01%에 든다. 김 교수는 “국제 협력 연구는 연구의 질을 높이는 한편 학계에서 연구 성과를 인정받는 좋은 방법”이라며 “최근 국내 학자들도 국제 공동 연구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미생물학과 화학처럼 지구과학, 재료과학, 물리학, 식물·동물과학 등에서도 국내 학자들은 피인용 수 상위 0.01% 수준의 우수한 논문을 배출했다. 이들 분야에선 전 세계 학자들이 한국 학자들의 논문을 많이 읽고, 연구 밑거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상·경북·전남대 국내 톱10 들어

 지방대의 연구역량도 높았다. 상위 1% 논문을 많이 낸 국내 대학 ‘톱 10’에 경상대(7위)·경북대(8위)·전남대(10위)가 올랐다. 이 대학들은 연구자들의 의욕을 북돋기 위해 인센티브제를 도입했다. 경북대 서창교 기획처장은 “교수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구비 관리시스템을 만들어 행정 부담을 덜어주고, 연구 질을 고려한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10년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 연구의 질적 수준은 양적 성장에 다소 못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공학 분야 세계 33위인 KAIST는 상위 1% 논문을 4864편 냈다. 9위인 미국 스탠퍼드대는 이보다 적은 3710편을 냈다. 스탠퍼드대가 KAIST보다 우수한 평가를 받은 건 피인용 수의 현격한 차이 때문이다. KAIST는 논문 한 편당 피인용이 5.2회였던 반면 스탠퍼드대는 11.6회에 이르렀다. 연구의 질적인 면에서 뒤진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수한 논문을 배출하기 위해선 장기적인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숭실대 김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가 원하는 연구과제가 바뀌어 진행하던 연구가 붕 뜨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연구기간이 길어 바로 결과물이 나오기 힘든 원천기술 분야는 연구비를 지원받는 데 어려움이 많은 만큼 장기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평가팀=천인성(팀장)·한은화·하선영·성시윤·윤석만·이한길 기자
자료 조사·분석=김효진·안세환·김은혜 연구원 
<기사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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