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자궁 임대, 난자 판매... 사생활 서비스, 이 정도였나?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 신혼부부 6쌍 중 1쌍은 온라인 데이트를 통해 만난다. 2300여만명의 미국인이 유료 온라인 데이트족이다. 미국 최대의 유료 온라인 데이트 업체인 매치닷컴의 한 해 수익은 우리 돈으로 4천여억 원에 이른다. 매치닷컴은 커플이 결혼하게 되면 회비 수입으로 8만3000달러를 거둬들인다. 8800만 원 정도의 돈이다. 

미국의 부부 상담 치료는 온라인 치료가 대세가 돼가고 있다. 현재 75만개의 사이트가 '온라인 결혼 상담' 서비스를, 10만개가 넘는 사이트가 '온라인 관계 상담'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미국의 이혼률은 꾸준히 50%대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1970년대 이래로 부부치료와 이혼이 동시에 증가했다는 점이다. <나를 빌려드립니다> 곳곳에 나오는 통계 정보들 중 일부다. 그다지 유쾌한 정보들은 아니다.

전혀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결혼은 평생의 반려자를 택하는 일이다. '주먹구구'나 '감'보다는 전문가들의 데이터가 더 요긴할지 모른다. 많은 미국인이 결혼에 필요한 8만3000달러를 기꺼이 쓰는 까닭이리라. 

하지만 부부치료와 이혼이 동시에 증가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려고 쓴 돈이 혹시 돈밖에 모르는 극악한 자본주의 사기꾼들의 농간에 따른 결과는 아닐까.

사생활과 감정이 거래되는 시장의 천태만상

이 책의 저자는 '감정사회학(Sociology of Emotion)'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앨리 러셀 혹실드다. 그녀는 인간, 특히 여성의 감정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 따라 규정되고 상품화하는 과정을 추적한 책 <감정노동>의 저자이기도 하다. 

'구글 베이스에서 원톨로지스트까지, 사생활을 사고파는 아웃소싱 자본주의'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선물의 정신이 사라져버린 시장자본주의 시대의 벌거벗은 민낯을 파헤친다. 저자의 말을 원용한다면, 사생활과 감정이 거래되는 시장의 천태만상을 그린 책으로 볼 수 있겠다.

100년 전, 아니 짧게 잡아 40년 전만 하더라도 인간의 정자와 난자는 판매되지 않았고, 여성의 자궁도 임대 대상이 아니었다.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 작명가, 인생 상담사, 파티 플래너, 유급 문상객은 존재하지 않았고 상상조차 못했다. (중략) 이 서비스들은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면서 공동체를 허물고, 정부를 무력화하고, 비영리 단체와 기관들을 주변화하면서 모든 것이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신념을 유포할 것이다.(357쪽)

이 책은 모두 14개 장을 통해 "모든 것이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신념을 유포"하는 사생활 서비스를 두루 살핀다. 러브 코치와 웨딩 플래너, 결혼생활 상담치료사, 대리모, 노인요양보호사 등이 그 구체적인 예들이다. 명칭들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어떤 것들은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정자와 난자 판매 및 자궁 임대를 예로 들어보자. 오늘날 불임 부부가 시장의 거래 관계를 통해 2세를 갖는 방식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은 각각 다른 대륙에서 정자와 난자를 구입한 뒤, 역시 다른 대륙에서 제3자에게 자궁을 임대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다. 저자는 2002년에 대리 출산 사업을 합법화한 인도에 약 3000개에 이르는 보조 생식술 클리닉이 있다고 보고한다. 2012년부터는 연간 23억 달러의 국내총샌상 유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인도를 세계적인 '아기 생산국'이나 '아기 생산 공장'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불임 시장, 인도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번성하는 사업 영역

불임 시장은 인도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번성하는 사업 영역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 결과다. 이 책의 수많은 통계 분석 자료 중 하나는 기증 난자가 1만 달러 이상의 보상을 약속받는다고 말해준다. 미국 명문대학인 하버드 대학교나 프린스턴 대학교의 대학신문에 실리는 기증 난자 모집 광고에서는 기증자에게 평균 3만5000달러 이상의 보상을 약속하기도 한다. 

이런 금액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이 책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런 차이는 난자 기증자의 학업 성적이 얼마나 우수(?)한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대학진학적성검사(SAT) 점수 100점당 2000달러씩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예비 부모들이 정자와 난자 기증자에게 궁금증을 갖는 건 당연하다. 많은 불임 클리닉이 예비 부모들에게 정자와 난자 기증자의 인적 사항이나 신체적 특성을 기록한 상세 자료를 제공하는 이유다. 가령 세계 최대의 정자은행인 자이텍스 코퍼레이션에서는 예비 고객들에게 태어날 아이의 예상 속눈썹 길이, 주근깨 유무, 기질 분류 테스트 결과를 포함하는 암호 성질 리스트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생활 아웃소싱 자본주의의 사례는 원톨로지스트(wantologist)다. 이름도 생소한 원톨로지스트가 하는 일은 뭘까. 

원톨로지스트는 고객이 지금 마음 속으로 절실히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고 결정해주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무언가를 원한다고 할 때, 과연 내가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는가 하는 문제들에 도움을 주고 돈을 챙겨가는 사람인 것이다. 

유급 원톨로지스트는 저자가 시장이 미국인의 사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침범해 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시장이 침실, 아침 식탁, 애정 생활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의 희로애락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각자가 처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기 형편껏 사생활 서비스를 받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맞벌이를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부부에게 아기 돌보미나 가사 도우미 등은 오히려 당연하고 필수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과연 그럴까.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의 관심을 최종 목적지에 고정해놓고 있다 보니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옮겨야 하는, 사실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많은 발걸음들을 간과한다. 인생의 성취감을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다시 말해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순간에 한정하게 되면 우리는 성취하는 기쁨, 다른 사람들하고 맺는 관계의 즐거움, 심지어는 이 과정에서 얻는 자신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360쪽)

전문가에게 인생을 맡기면, 실패하지 않을까

새로 태어난 아기 이름을 낯 모르는 작명가에게 맡겨 짓는 부부들이 적지 않다. 물론 사주팔자에 맞는 좋은 이름을 지어 줌으로써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스스로 자기 자식의 이름을 짓는 일의 즐거움과 보람은 전혀 찾을 수 없다. 훗날 아이에게 "아빠, 엄마가 네 이름을 이러저러하게 지었단다" 하고 추억어린 한 마디를 던져주기도 쉽지 않게 된다.

나는 세 아이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 2학년인 큰딸이 뜬금없이 내게 자기 이름을 어떻게 지었냐고 물은 적이 있다. 몇 날 며칠을 한자 사전을 뒤지고, 인터넷 사이트들을 들락거리며, 연필로 예비 이름들을 지어놓고 소리내 불러보면서 좋은 어감을 주는 이름을 고른 일을 두서없이 일러주었다. 내 말을 유심히 듣는 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사생활을 노출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죽 답답하고 힘들면 돈을 주고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겠는가. 이름은 평생 쓰게 되는 중요한 것이니, 그것을 결정하는 데 전문(?) 작명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부는 아닌 듯하다.

시장은 우리의 사고 영역까지 깊숙이 침범해 들어와 있다. 따라서 너무 안일한 태도로 시장 서비스를 대하면 시장에서 판매 또는 임대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관한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359쪽)

한 사람의 일생 전체를 돈을 주고 관리해주는 평생서비스 업체가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출생과 성장,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모든 일을 '전문가'의 손으로 해결하니 실패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출발점과 방향은 달랐지만,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스러운 일이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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