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전해진 도시락 상자로 이어지는 이야기, 여운 가득 남겨
<기사 출처 : 미디어스>
한국에서 인도 영화를 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애초 수입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거니와 수입이 되어도 IPTV/VOD용으로 직행하기 일쑤다. 설령 극장에 걸리게 되어도 너무 길다는 이유로 일부러 몇몇 장면을 삭제한 국제판(인터내셔널판)을 수입하거나, 아니면 그 판본에서도 수입사 임의로 더욱 자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 영화가 제각기 다른 풍미와 맛을 지니듯이 인도 영화 또한 접하기는 쉽지 않아도 그 특유의 매력을 깨닫는 순간 인도 영화는 관객에게 있어 매우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영화 중간에 흐름과 상관없이 춤을 추는 장면만 들어간다고 반쯤은 비아냥거림이 섞인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런 편견에만 입각해서 한 국가의 영화를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일에 개봉한 <런치박스>(수입 피터팬픽쳐스, 배급 팝엔터테인먼트)는 인도영화 마니아를 비롯해 인도영화가 과연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은 관객, 아니면 국적을 떠나 깊이 있는 드라마를 원하는 관객 모두에게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도시락’에 얽힌 사람들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기서 미리 숙지하면 인도 뭄바이의 좋은 문화가 ‘다바왈라’이다. 다바왈라는 도시락 배달부로, 가정에서 만든 도시락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받아가 정해진 사람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점심이 끝날 시간에 찾아와 빈 도시락통을 회수해 가정에 다시 돌려준다. 영화는 한 가정의 아내가 만든 도시락이 다바왈라의 실수로 엉뚱한 사람에게 전해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에서 시작한다. 도시락을 만든 사람은 최근 남편과 소원해짐을 느끼고서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해 이웃사람의 조언을 듣고 도시락을 만든 주부 일라(님랏 카우르 役)이며, 도시락을 받은 사람은 곧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친구도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지내고 있는 회사원 사잔(이르판 칸 役)이다.
깨끗하게 비워진 도시락통을 받은 일라는 남편이 자신의 도시락에 만족한 것으로, 사잔은 자신이 신청한 도시락 가게의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착각하지만 곧 그 환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대신 깨진 환상을 메꾸는 것은 도시락통을 타고 오가는 이 둘의 편지이다. 처음 도시락이 과연 남편에게 잘 도착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시작된 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일라와 사잔이 처한 진솔한 상황을 담아내고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두 사람은 어느새 점점 가까워지게 된다. 이제 그들은 편지를 넘어 직접 얼굴을 보고 만나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마냥 쉽게 흐르지 않는 법이다.
영화의 주제는 <런치박스> 전에 한국에 개봉했던 인도 영화 <굿모닝 맨하탄>을 연상하게 한다. <굿모닝 맨하탄>은 다른 가족에게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게다가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 받던 중산층 주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굿모닝 맨하탄>에서의 문제 해결이 가족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인정받는 것으로 원활하게 흘러갔다면 <런치박스>의 상황은 조금 더 깊다. 일라는 힌두교인에 중산층 집안의 아내이고, 사잔은 기독교인에 비록 가족은 없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다. 계급 간의 분리가 철저한 인도에서 이 둘은 우연한 사고가 없었다면 단 한 번도 이야기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바왈라의 실수는 둘 사의 소통을 낳고 그로 인해 둘은 자신들이 외롭다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 외로움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 인도의 현실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한국만큼이나 더 압축적으로 발전 중인 인도는 한국만큼이나 더 많은 모순에 휩싸여 있다. 일라의 남편이 휴대폰을 통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 등을 통해 현대화되었음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일라와 남편과의 사이가 계속 소원해지고 일라가 도시락에 대해 조언을 받은 윗집 아줌마와 남편과의 사정 등을 통해 아직도 구시대적인 부분이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라와 사잔을 이어주는 끈이 상대적으로 낡은 매체인 편지라는 설정은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어떻게 현재의 시점에서 오래된 것을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과거와 전통을 버리지도, 마냥 띄우지도 않는 대신 빠르게 변하는 현대에 살고 있지만 과거가 익숙하며, 과거의 문제에 기인한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이 땅을 딛을 수 있는 근간이 된다.
하지만 그 만남은 단순히 자기 위안을 넘어 더 큰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노력과 힘이 있어야 한다. 영화 후반부에 두 주인공이 서로 만나려 하지만 계속 엇갈리는 장면은 생각이 현실로 구체화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이 둘이 만나지 못하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전개가 단순히 이 둘이 극적으로 만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영화의 의미는 지금보다도 훨씬 반감되지 않았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식의 전개와 귀결을 통해 작품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 낳을 수 있는 어떠한 논란을 피하는 동시에 이 둘의 만남이 단순히 애정이 아니라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만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개를 통해 영화의 여운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깊게 남는다.
영화는 둘 사이의 이야기 외에도 한국 관객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요소가 산적해 있다. 영화의 첫머리와 끝을 장식하는 다바왈라들이 도시락을 전해주는 여정들, 일라가 도시락에 담을 음식을 만드는 모습들은 TV 해외여행 프로그램에서나 나올 법한 이국적인 장면들이다. 또한 일라와 사잔이 거주하는 집, 사잔이 근무하는 직장, 뭄바이의 거리 등 일상의 장면들 역시 인도인의 일상이 어떤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훌륭한 눈요기 거리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러한 장면들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현실과 일상에 치이는 중년 관객들에게 공감을 더 살지도 모르겠다. 인도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 역시 압축적인 성장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와 모순들로 갖은 어려움에 처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년들에게 각자의 일라와 다바처럼 고민을 나누는 대상이 반드시 있을 수는 없더라도 이 영화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런치박스>는 그렇게 인도를 넘어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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