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6일 금요일

아시아의 시각으로 본 20세기 형성 과정

20세기 벽두에 벌어진 러일전쟁의 분수령은 쓰시마해전이었다. 일본 해군은 지구를 반 바퀴돌아 쓰시마 해협에 도착한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파했다. 일본의 승리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세 이래 비유럽 국가의 유럽 국가에 대한 첫 전승이었다. 러일전쟁의 승리는 일본이 동아시아 패권의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됐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라는 악몽의 서막이었다. 우리에겐 비극의 전조였지만 일본의 승리는 다른 아시아인들을 남다른 감회에 젖게 했다. 훗날 인도의 초대 총리가 되는 영국 유학생 자와할랄 네루는 '날아갈 듯한 기분"을 느꼈고, 런던에서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의 민족주의자 쑨원도 뜨거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의 승리는 아시아는 열등하다고 생각하던 서구인들에게 편견을 교정할 기회를 제공했고, 아시아인들에게 '유색인의 자긍심'을 느끼게 한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러일전쟁 뒤 아시아 각국 지식인들은 일본 배우기에 나섰고 인도 등 아시아의 서구 식민지에선 민족주의가 불길처럼 번졌다. 일본의 근대화 사례는 아시아 나라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각성과 함께 독립에의 영감을 불어넣었다. 오랜 식민 통치로 신음하던 아시아 국가들에게 러일전쟁은 하나의 거대한 전환점이 됐다. 아시아가 20세기를 저항과 재건의 시기로 만드는 데 러일전쟁이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제국의 폐허에서>는 20세기의 중심 사건을 "아시아가 지적ㆍ정치적으로 각성하고 아시아와 유럽 제국들의 폐허에서 부상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서구의 이미지보다는 한때 종속되었던 사람들의 염원과 열망에 맞추어 세계가 어떻게 계속 재형성 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상 21쪽)이라고도 역설한다.

책은 지난 세기 아시아의 재형성 과정을 돌아보기 위해 주요 사상가의 행적과 사상을 되짚는다. 베트남 통일의 영웅 호치민과 쑨원 등 역사에 굵게 이름을 남긴 사람들도 등장하지만 역사의 뒤안길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일조한 인물들을 줌인 한다. 19세기 이슬람 부흥운동을 이끈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 청나라 말 청년들의 사고를 지배했던 량치차오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이 "아시아 전역에서 서구와 서구의 지배를 향한 분노, 조국의 무력함과 쇠퇴를 근심하는 마음이 대중의 민족주의적 해방 운동과 야심 찬 건국 계획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선두"(23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량치차오는 국권 회복의 강박을 마오쩌둥 등에게, 알아프카니는 자강에 대한 무슬림의 강박을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에게 물려준 인물이다.

아시아의 근대 형성 과정을 되돌아보는 책이다.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근대사의 인물들이 펼쳐낸 역사적 장면들을 복기했다. 인도 출신인 저자는 <거꾸로 가는 나라들>과 <번뇌의 종식> 등을 썼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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