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5일 수요일

英, 푸젠성 차나무 인도로 빼돌려 홍차 세계화했지만…

19세기 영국의 중국茶밀반출 작전… 우이산서 되짚어보다


예로부터 차는 해독 효능으로 귀하게 다뤄졌다. 그러니 차 마시기가 차나무의 원산인 중국에서 일상의 다반사(茶飯事)가 된 건 당연지사. 차는 문명의 태동과 더불어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 전래됐다. 그게 영국에 전해진 건 17세기. 찰스2세 왕에게 시집간 포르투갈 공주 캐틀린이 동방무역선이 실어 온 중국차를 가져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중국엔 ‘화근’이 됐다. 이 차로 인해 2세기 후 환난을 겪게 된 것인데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청나라) 침략이 그것이다.

당시 대영제국의 교활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 차 살 자금을 중국에서 조달한 것인데 식민지 인도에서 값싼 현지 노동력으로 재배한 아편을 중국인에게 비싸게 팔아 그 돈으로 중국 차를 산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편전쟁(1840∼1842)으로 막히자 이번엔 아예 차나무를 훔쳐 인도에서 재배한 ‘짝퉁 중국차’ 제조에 나선 것. 최고급 홍차로 이름난 다르질링 홍차가 그것이다. 

그 차나무와 씨를 훔쳐 간 도둑은 당시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고용한 스코틀랜드인 정원사 로버트 포천(1812∼1880)이다. 그는 세 차례나 중국에 잠입해 수년간 근 2만 그루의 차나무(묘목 가지 씨앗 등)를 훔쳐 인도로 밀반출했다. 그때 차를 만드는 중국 장인도 함께 데려갔다. 다르질링 홍차는 이렇게 탄생해 세계화됐다. 최근 그 진가를 재조명받고 있는 중국 홍차와 그 차의 성지라 할 우이 산(武夷山·푸젠 성)을 찾는 중국 차 여행으로 안내한다. 


식물 사냥꾼 로버트 포천의 차 도둑질



1848년 5월. 영락없는 현지 중국인 차림에 머리까지 수건으로 동여매 외국인인 줄 전혀 모르게 위장한 포천이 몸종처럼 부리는 안내자 왕 씨를 따라 중국 항저우―상하이에서 190km 떨어진 저장 성 대도시로 남송의 수도―의 다원(茶園)을 거닐고 있었다. 그는 한 해 전 영국왕립정원협회가 파견한 ‘식물사냥꾼(Plant hunter)’. 중국 내륙의 최고급 차 산지를 찾아가 차나무 씨와 묘목, 가지를 밀반출해 인도로 보내라는 밀명을 받고 잠입한 산업스파이다. 당시 중국은 아편전쟁에 패한 뒤 서구열강과 강제로 체결한 난징조약(1842년)으로 홍콩 상하이 등 5개 도시를 어쩔 수 없이 개항했다. 하지만 대륙의 나머지는 여전히 굳게 닫고 있었다. 중국 차의 반출을 막는 것도 한 이유였다. 그는 항저우와 인근 안후이 성 녹차 산지-중국차의 시배지로 알려진 곳―를 둘러본 뒤 남쪽 푸젠 성의 부해(Bohea)―당시는 이곳 차를 이렇게 불렀다―산지 우이 산을 찾았다. 당시 영국은 차에 대해 무지했다. 홍차와 녹차가 다른 나무의 잎이라고 알 정도로. 그럼에도 꿈은 야무졌다. 중국 최고의 차나무를 다르질링에 심어 이 차 플랜테이션에서 생산한 최고급 홍차로 돈을 벌겠다는 것. 이미 엄청난 땅을 비워 둔 채 묘목과 씨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포천은 정원사 중에서도 죽어 가는 식물을 살려 내는 기술이 뛰어났다. 그러니 훔친 차나무를 살려 인도로 보내는 일에는 그보다 적격자가 없었다. 당시 영국은 이런 토종 식물 탈취를 국가전략사업으로 삼았던 ‘선진국’. 포천의 중국 잠입도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5년 전 이미 3년간 중국의 내륙을 누볐다. 당시 임무는 차나무를 포함해 돈이 될 만한 토종 식물의 밀반출. 하지만 이번은 오로지 차나무가 목표였다. 

항저우―룽징차 산지―를 찾았을 땐 찻잎 따기가 한창인 봄이었다. 그는 찻잎을 덖어서 말리고 보관하는 제다(製茶)의 전 과정을 소상히 살피고 기록했다. 더불어 묘목과 씨는 물론이고 가지까지 구해 바리바리 쌌다. 두 번째 방문지는 중국에서 차가 최초로 시작된 안후이 성의 쑹뤄(松蘿) 산. 겨울이 오자 영사관이 있는 상하이로 돌아와 훔친 묘목과 씨를 건사해 캘커타(현 콜카타·인도)의 영국 동인도회사로 보냈다. 영국인이 홍차라 이름 붙인 반발효차 부해의 산지인 후젠 성의 우이(武夷) 산으로 향한 건 그걸 다 마친 이듬해(1849년) 5월. 상하이 남쪽 항저우 만 아래 국제 무역항 닝보를 경유하는 3개월의 장정이었다. 

중국 10대 명산 중 하나인 우이 산은 다훙파오(大紅袍)와 정산샤오중(正山小種)이라는 중국 최고이자 세계 최고의 홍차가 나는 곳. 당시도 이곳은 중국 최고 차 산지여서 외부 밀반출을 막으려는 청 왕조에 의해 군사가 배치돼 있었다. 게다가 오지인지라 당시까진 어떤 서양인도 발을 들이지 못했던 금단과 미답의 차 성지. ‘부해’는 이곳의 지명이자 여기서 나는 차의 통칭이었다.


인도산 아편으로 중국 차 사들이기
인도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인도 북부에서 계속되던 침략 전쟁과 철도 부설 등 인도 경영의 막대한 경비를 모두 중국서 조달했다.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팔아 벌어들인 것이다. 중국 차 역시 그 돈으로 구입했다. 그런데 이런 꽃놀이에 말썽이 생겼다. 청나라의 애국 관료 임칙서(1785∼1850)가 아편의 사용 및 교역 금지령을 내림과 동시에 영국 무역선에 실린 아편을 압수해 폐기한 것(1839년)이다. 

영국에는 대재앙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전쟁을 선언했다. 이게 아편전쟁이다. 결과는 중국의 참패. 결국 난징조약이 체결됐고 중국은 서구열강에 강제 개방되며 반식민지로 전락하게 됐다. 이때의 개항 요구는 영국이 무역 기조를 아편에서 차로 바꾸기 위한 전략. 중국 차를 인도에서 식민지 인력으로 직접 재배해 전 세계에 내다 팔아 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포함됐다. 그 전위 조직은 식민지 경제 침략의 선봉에 서온 영국 동인도회사. 영국왕립정원협회에 식물사냥꾼 물색을 의뢰한 장본인으로 포천은 이렇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중국 홍차를 찾아 우이 산으로



포천이 상하이를 떠난 지 3개월(1849년 여름). 그는 마침내 푸젠 성 우이 산에 도착했다. 우이 산은 높지 않다. 하지만 그 자태는 어느 산 못잖게 아름답다. 그중 백미는 석회암 산지가 오랜 세월 빗물에 녹아 형성된 기암절벽의 아홉 구비 물길인 주취시(九曲溪). 현재 우이 산에서 생산되는 차는 ‘우이옌차(武夷巖茶) 차라고 불리는데 바위 ‘巖’자에서 보듯 이곳 차나무는 사암으로 이뤄진 바위 계곡에서 자란다. 그리고 그건 모두 다훙파오라는 이름의 특별한 차나무가 모수(母樹)다.

당시 포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지 다훙파오라는 차나무가 자라는 수이롄둥 계곡부터 찾았다. 그곳은 높은 바위 절벽 사이에 생긴 폭 50m 이하의 협곡. 다훙파오 모수는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협곡 막장의 절벽 중간 높이 10m쯤에 위태로이 서 있었다. 명차의 조건은 큰 일교차와 오전 안개. 여기가 딱 그랬다. 협곡은 햇빛을 적당히 가리고 수시로 끼는 아침 안개는 계곡을 촉촉이 적셨다. 절벽에 활착한 차나무는 그 습기를 먹으며 찻잎을 낸다.

그는 우이산의 한 절에 유숙했다. 그러면서 역시 묘목을 구하고 차씨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그는 ‘포천’이란 이름 그대로 ‘행운아’였다. 다훙파오와 정산샤오중이란 중국 최고의 헤이차(黑茶) 산지를 에두르지 않고 곧장 제대로 찾아가서다. 


英홍차, 씨앗의 고향 우이산의 ‘정산샤오중’에 대적 안돼

다훙파오는 전설에서 탄생한 명차다. 옥황상제가 악귀로 변한 아홉 마리 용을 우이산에서 물리치자 죽은 용이 아홉 계곡을 만들었고 그때 명상 중이던 고승 티에화의 눈에 성스러운 빛을 번득이는 세 그루 나무가 보였다. 수이롄둥 절벽의 차나무다. 

하지만 그 벽을 오르기에 너무 늙은 스님은 키우던 원숭이를 보내 찻잎을 따오게 했다. 몸져 누워 과거를 보러 갈 수 없게 된 선비에게 달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차를 마신 선비는 금방 쾌차했고 과거에 응시해 장원급제했다. 그리고 황제 알현 중에 황후도 앓고 있음을 알고는 그 차를 주어 낫게 했다. 왕은 떠나는 선비에게 큰 비단 홍포를 주며 그 고마운 차나무가 서리를 맞지 않게 뿌리 위에 덮어 주라고 부탁했다. 그게 다훙파오의 유래인데 포천도 당시 이 차나무를 찾아보았고 부해가 모두 그 자손임을 확인했다. 그런 그가 그 씨앗을 그냥 둘 리 없었다. 거기서 구한 씨와 차나무를 상하이로 갖고 돌아가 정성스레 보존한 뒤 인도로 보냈다. 


다르질링 차의 어머니, 정산샤오중을 훔치다

정산샤오중은 중국 홍차의 최고봉으로 다훙파오가 나는 우이산 특산품이다. 다원은 주취시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쯤 오르는 해발 900m 계곡(국가급자연보호구 안)으로 포천이 찾았을 당시와 변함이 없다. 지난달 내가 여길 찾았을 때도 외국인에 대한 통제 역시 당시와 다르지 않았다. 사전 허가 없이는 어떤 외국인도 검문소를 통과할 수 없다. 이유는 ‘국가급자연보호구’ 출입 규정인데 내 눈엔 포천의 차 도적질로 비롯된 경계심이 아직도 계속되는 듯 보였다. 그 차밭은 검문소를 지난 후에도 30분쯤 더 올라야 한다. 드디어 계곡 물가에 차창(茶倉·차를 만드는 곳)이 보인다. 정산샤오중의 원조인 정산차예유한공사(회장 장위안쉰·江元勳)인데 한 건물에선 흰 연기가 대나무 수풀의 산을 배경으로 피어 올랐다. 말린 찻잎에 백송(白松)의 훈연을 하느라 소나무 장작을 태우는 훈배 과정에서 생긴 연기다. 

정산샤오중은 영국인이 최고로 손꼽는 명품 홍차다. 동시에 중국인이 최고의 맛으로 치는 헤이차(중국차의 발효도에 따른 분류상 홍차는 흑차 범주에 듦)다. 2005년엔 오랜 연구 끝에 정산샤오중 가운데서도 최고의 맛을 내는 ‘진쥔메이(金俊美)’가 개발됐는데 그곳도 바로 여기. 이곳 역시 포천이 다녀갔다. 당시도 정산샤오중 차창과 다원이 있는 이곳 퉁무(桐木) 촌 산지는 부해의 생산과 유통의 중심. 우이산 시에서 이곳까지 차로 오르다 보면 여러 마을을 지나는데 지금도 변함없이 정산샤오중 차나무의 찻잎을 말리고 덖어 차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차창 마을이다. 겉모습은 변했을지 몰라도 소나무 장작불로 찻잎을 훈배하는 2층 건물은 여전히 마을마다 건재하다. 그러면 포천이 훔친 차나무와 씨는 어찌됐을까. 그건 모두 히말라야 동부의 고산지대(평균고도 2045.2m) 다르질링으로 보내졌다. 최고의 중국 헤이차 산지 우이산과 비슷한 기후로 판단돼서다. 세 차례 중국 잠입을 통해 포천이 보낸 차나무 2만 개(묘목과 가지)의 시배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차씨는 달랐다. 발아에 성공한 것이다. 네팔에서 불려온 외과의사 캠벨 박사의 공이 컸다. 그는 1841년부터 차씨 발아 연구를 계속했다. 씨가 발아하자 영국은 대량 생산 목적의 배양소를 세웠다. 그리고 그 씨로 묘목을 키워 다원 조성에 나섰다. 그 찻잎으로 차를 만들게 된 건 1860년. 다원 4개의 다르질링 차창이다. 

그렇게 해서 다원은 15년 만인 1874년에 113개(총 6000ha)로 는다. 현재는 86개 다원(1만9000ha)이 연간 1100만 kg의 홍차를 생산 중. 인도 차 생산량의 7%를 차지한다. 

다르질링 홍차는 서양산 홍차 중 최고급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맛을 결정하는 산화도-급속 발효와 훈배에서 온다―만큼은 90% 미만. 이건 중국인의 입맛 기준으로는 반발효차―우룽과 다훙파오 같은―에 속한다. 이게 뜻하는 것은 영국이 제아무리 1세기 이상 노력을 기울인 최고품이라 해도 그 씨를 제공한 정산샤오중엔 대적하지 못함을 말한다.

우룽차의 발상지… 정산샤오중-다훙파오-육계-수선 명성

우이산의 명차들



란 차나무에서 딴 잎을 말렸다가 물에 넣어 우려 마시는 음료다. 그런 차는 크게 녹차와 홍차로 나뉘는데 그 차이―색과 맛―는 전적으로 찻잎을 말리는 과정에서 온다. 초록의 생엽(生葉)은 잎을 따 그대로 두면 함유수분에 의해 자체 발효해 검게 변하게 마련. 녹차는 발효가 되지 않게 잎을 따자마자 뜨거운 솥에서 덖어 즉시 수분을 제거한 차다. 반면 홍차는 딴 잎을 한동안 햇볕에 쬐어 시들게 하며 일부러 발효시킨 뒤 건조시킨 차.

중국 홍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완전발효차(푸얼), 반발효차(우룽), 급속발효차(정산샤오중)로 나뉜다. 그리고 우이 산은 안후이 성의 기문과 더불어 중국홍차를 대표하는데 거기서도 반 발효차의 상징인 우룽의 발상지로 그 명성이 높다. 우이 산에서 나는 반발효차는 육계 수선 철라한 등 7종. ‘우이옌차(武夷岩茶)’란 이것을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인데 그 대표선수는 역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다훙파오(大紅袍). 우이 산이 중국 홍차의 기준이 된 데는 기후와 지형이 핵심. 늘 안개가 자욱하고 일조시간이 적어(연간 1900시간) 평소 80%를 유지하는 습도가 찻잎 생육에 기막힌 조건을 제공한다. 붉은 사암의 바위 지형도 큰 몫을 하는데 뿌리로 흡수하는 수분이 아주 적어서다. 우이산 차가 암차(巖茶)라 불리는 이유다. 찻잎은 어린 잎을 선호하는 녹차와 달리 입하(立夏)전후의 펼쳐진 것만 딴다. 

서양인이 최고급 홍차로 손꼽는 정산샤오중(正山小種)도 이 우이 산에서 난다. 재배지는 국가급자연보호구 내 해발 400∼1000m의 싱춘(星村) 진 퉁무(桐木) 현. 이 차는 훈향(薰香)과 달큼한 여운의 뒷맛, 그리고 황금빛깔이 특징인데 훈배(薰培)라는 독특한 가공법에서 온다. 훈배란 찻잎을 백송(白松)의 장작불 열기와 연기를 이용해 건조시키는 것. 정산샤오중 홍차 중 최고는 금값에 버금갈 고가의 ‘진준메이’. 이 차는 정산샤오중 차나무에서도 막 나온 여린 잎만 골라 만든 것으로 2005년 개발됐다.

그런데 중국에선 홍차를 헤이차(黑茶·Black Tea)라고 읽고 쓴다. 영국홍차-인도 아삼지방의 토종 차나무를 개량해 스리랑카까지 유포시켜 대량생산해 전 세계에 팔아온 ‘홍차’(紅茶·Red Tea)와 차별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절경 도는 아홉굽이 물길, 대나무 뗏목 타고 훠어이▼
푸젠성 우이산 둘러보니



8월 중순 중국 푸젠성의 우이산(武夷山)을 찾았다. 출발지는 상하이(上海). 로버트 포천이 1849년 석 달 걸려 찾은 우이산이 그날 내겐 딱 한 시간 거리였다. 하루 한 편 훙차오(虹橋) 공항을 오가는 중국 동방항공의 비행편 덕분이다. 물론 귀로에 탑승한 기차(침대칸)는 11시간이나 걸렸지만.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던 상하이. 반면 우이산은 32도를 넘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론 선선하기까지 했다. 산에 둘러싸인 내륙산지에다 주취시(九曲溪)를 흐르는 충양시(崇暘溪) 강, 그리고 적은 인구 덕분. 한글 간판의 호텔 톈신거(天心閣)는 시내 중심의 상가 뒤편, 우이산의 랜드마크인 다왕펑(大王峰)이 올려다 보이는 한적한 곳에 자리 잡았다. 정산샤오중 차의 유일한 한국판매처인 중식당 겸 찻집 후젠무이(서울)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런데 밤이면 호텔 앞은 불야성으로 변한다. 텐트에서 요리를 내는 음식거리다. 

차 산지답게 우이산 시의 중심가는 거개가 차 가게나 관련 상점이다. 그런데 여기선 차를 잎째로 무게를 달아 판다. 손님도 찻잎을 보고 만지고 그것도 모자라 맛까지 본 뒤 산다. 그래서 차 가게의 차 인심은 중국인 마음만큼이나 넓고 넉넉하다. 포장은 구매 직후 즉석에서 해준다. 기계를 이용해 작은 봉투(8g들이)에 담아 케이스에 넣는다. 차창이 직접 운영하는 대형판매점도 시내에 있다. 가는 곳마다 차를 내니 우이산에선 차를 돈 내고 마실 일이 없었다.

우이산 최고의 관광거리는 주취시다. 아홉 굽이 물 도리의 물길이 기암절벽을 끼고 9.5km나 이어지는데 이건 대나무로 엮은 뗏목을 타고 가야 제격. 앞뒤 사공이 모는 뗏목의 의자에 앉아 천천히 유람(두시간)하다 보면 그 아름다운 비경에 마치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두 번째 볼거리는 주취시가 훤히 조망되는 톈유펑(天游峰) 걸어 오르기. 뗏목하차장에서 한 시간 걸린다. 꼭대기엔 도교사원이 있는데 이층에서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이 춤을 추었다는 곳이다. 주희 기념관인 우이 궁은 톈유펑의 초입에 있다. 

하지만 차 애호가에게는 이보다 수이롄둥이 우선이다. 전설의 다훙파오 차나무가 있는 데다 협곡의 풍광이 멋져서다. 톈신거 호텔서 멀지 않은데 자연보호구역만 운행하는 관광용 트램(코끼리열차)이 데려다주어 20분만 걸으면 된다. 수이롄둥은 바위절벽 사이의 좁은 틈새의 협곡. 다훙파오 차나무 세 그루는 절벽 위에 있다. 협곡의 산등성과 빈 터는 모두 차밭. 이 찻잎으로 만든 게 내차(內茶)로 협곡밖의 외차에 비해 비싸다. 

우이산 시내는 한적하다. 자전거 인력거가 택시와 공존할 정도. 음식점도 많은데 대부분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산채가 많은 데다 기름지지 않아서다. 꼭 맛볼 것은 ‘논 닭’이라고 불리는 식용개구리와 두꺼비. 기름에 튀겨 내는데 맛도 좋다. 내게 최고 음식점은 아침에 들른 골목식당. 즉석 군만두부터 간장국수, 차계란(홍차에 삶아 검은 빛깔로 변한 달걀) 등을 현지인 틈에 끼어 먹는데 아주 저렴하다. 

장이머우 감독이 한밤에 자연을 무대로 펼치도록 제작한 인상(印象)시리즈 쇼는 여기에도 있다. 우이산 전설에 바탕한 ‘인상 다훙파오’인데 매일 두 차례 공연한다. 보통석 218원. 


우이산 여행하기



찾아가기: ▽항공: 상하이(홍차오 공항)∼우이산(동방항공) 하루 한 편 운행(오후 7시 15분 출발). 한 시간 소요 ▽철도: 상하이∼우이산 특급열차 11시간 소요(야간열차와 침대칸 있음) ▽현지 투어: 상주 한국어 가이드는 없지만 톈신거 호텔에서 알선 가능. 그간 거쳐 간 한국인을 통해 여행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 여행 및 가이드 안내는 서울의 중식당 겸 찻집 후젠무이(02-599-1008). 톈신거 호텔: 우이산 시내. 현지 전화 0599-5251977 

2005년 ‘진쥔메이’ 탄생시켜 홍차 신세계 열었죠

24대 400여년 가업 이은 장위안쉰 회장

2005년 진쥔메이(金俊眉·Golden Eyebrows)를 개발해 홍차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우이산 자연보호구 내 정산차예(正山茶業)유한공사의 장위안쉰(江元勳·사진) 회장을 해발 900m 산중턱 계곡의 차창(茶倉·푸젠 성 우이산 시 싱춘 진 퉁무 촌)에서 지난달 중순 만났다. 정산샤오중 차창은 400여 년간 대대로 내려온 가업으로 그는 24대째다. “남송시대 주희 선생이 오실 즈음 선조님도 후난 성에서 이주해 왔습니다.” 주자학을 창시한 주희(1130∼1200)는 전란을 피해 우이산에 찾아들었고 그래서 우이산엔 그의 학문과 가르침을 기념한 ‘우이궁’이 있다. 

그에게 다원 규모를 물었다. “글쎄요. 여기 퉁무 촌 산악의 차밭은 전부 다일 겁니다. 모두 국가급 자연보호구 안이지요.” 퉁무 촌은 1849년 로버트 포천이 차나무와 씨를 훔치려는 일념으로 잠입한 부해의 중심. 그 전통과 명성은 지금도 여전한데 특히 자연보호구 안에서 생산되는 정산차예의 정산샤오중 차는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 홍차로 손꼽힌다. 

차 애호가라면 당연히 갖는 의문 하나. 정산샤오중 차 맛과 향의 핵심인 훈배라는 특별한 기법이 유래한 역사다. “어느 날 군대가 여길 지나게 됐어요. 잘 곳을 요구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보니 찻잎을 쌓아둔 창고를 내주었지요. 그런데 며칠 후 가보니 찻잎이 엉망이 된 거예요. 이걸론 좋은 차를 만들 수 없다 싶어 모두 포기했는데 한 분이 소나무 장작불로 그 찻잎을 다시 말렸다는군요. 그때 쐰 연기 덕분에 변질된 차의 맛과 향이 좀 무마됐겠지요. 그렇다 보니 싼값에 넘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듬해 뜻밖의 주문을 받게 된 겁니다. 영국에 이 차를 수출한 상인이 그 차를 높은 가격에 사겠다고 제안한 거지요.”

진쥔메이에 대해선 이렇게 평했다. “저희 차창 것 말고도 있지만 그건 모방품으로 보시면 됩니다. 진쥔메이는 아주 특별한 맛과 향을 지녔습니다. 기존 홍차가 ‘농홍고습’(濃紅苦濕·빨간 빛깔에 쓰고 떫고 진한 맛)이라면 진쥔메이는 ‘경향감탄’(輕香甘呑·은은한 향에 단맛이 은근히 감도는 맛)이지요.” 그러면서 “저희 정산샤오중 차가 이제까진 한국에 공급되지 않았는데 이젠 후젠무이(서울의 중식당 겸 찻집)를 통해 맛볼 수 있을 겁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사업가로 큰돈을 벌었는데도 차밭을 전혀 늘리지 않았다. 400여 년간 함께 지내온 퉁무 촌 차창의 주민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뜻이자 희망이어서다.


▼우이옌차 음미하며 중국음식 즐겨보세요▼
서울 서초동 ‘후젠무이’



정산샤오중과 다훙파오. 우이산에서 생산되는 우이옌차(武夷岩茶)를 대표하는 이 차는 애호가 사이에 평생 꼭 한 번 맛보고픈, 늘 마시고픈 명차다. 이 중 중국 헤이차(黑茶)의 최고봉인 정산샤오중은 워낙에 고가인 데다 국내에 수입도 되지 않아 마실 기회가 흔치 않다. 그에 비해 다훙파오는 좀 저렴한 편이지만 이나마도 고급 찻집에서 맛볼 수 있는 정도다. 그런데 이 두 명차를 한곳에서, 그것도 중국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식당 겸 찻집인 서울의 ‘후젠무이’다. 중국에서 차는 음식과 조화를 염두에 둔 음료다. 그래서 식탁에서 더더욱 향과 맛이 돋보인다.

후젠무이는 산둥 성이 고향인 한국 태생 화교 추이유페이 씨(푸드랩 상하이최선생 대표)가 뉴욕서 돌아와 대물림한 중식당 겸 중국찻집. 셰프 등 종업원이 모두 중국인이다. 여기선 중국 가정에서 평소 즐기는 제철 재료의 다양한 음식을 한국인 입맛과 취향으로 특색 있게 조리, 미식가 사이에도 소문났다. 특이한 것은 메뉴 외 요리가 더 인기를 끄는 것. 단골들은 주문 없이 그날그날 셰프가 내는 것을 맛본다. 깔끔한 맛에 부담 없는 가격도 특징.

추이 대표도 차 전문가로 그 지식은 모두 우이산에 호텔 톈신거(天心閣)를 짓고 수시로 찾을 만치 중국 차에 심취한 부모로부터 전수받았다. 우이산 정산차예의 정산샤오중차 한국 독점판매권도 이 회사 장위안쉰 회장과 오랜 우의를 통해 얻은 것. 덕분에 후젠무이에선 정산샤오중과 다훙파오 등의 우이옌차를 비롯해 다양한 중국 차를 식사와 더불어 즐긴다. 예약은 필수.

후젠무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95-5 로펌애비뉴 지하. 02-599-1008. 명절만 쉬고 토·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기사 출처 : 동아닷컴,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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