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인도, 對파키스탄 3차전쟁 직전 이스라엘 무기확보"

인도학자 신간서 주장…"박물관 소장 외교문서로 확인" 

인도가 1971년 파키스탄과 3차 전쟁을 벌이기 직전에 미수교국이던 이스라엘의 무기를 확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인도 유수의 공공정책연구기관 '정책연구소'(CPR) 소속 학자인 스리나트 라가반이 수도 뉴델리 소재 '네루기념박물관' 등지에 소장된 외교문서를 뒤져 저술해 최근 내놓은 '1971 : 방글라데시 탄생에 얽힌 세계 역사'란 책에서 나왔다고 인도 일간지 힌두스탄타임스가 1일 전했다. 

1971년 전쟁은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지역인 카슈미르의 영유권을 놓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1947년, 1965년 각각 전쟁을 치른 뒤 일어난 것이다. 

양국간 3차 전쟁인 이 전쟁은 그해 12월 3일 서파키스탄(현 파키스탄)군이 인도 공군기지를 선제공격함으로써 개시돼 13일 만에 인도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은 서파키스탄과 같은 나라였던 동파키스탄에서 일어난 독립 움직임과 맞물려 발발했다. 서파키스탄의 패배로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재탄생했다.

힌두스탄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당시 프랑스 주재 인도 대사인 D.N. 차테르지가 전쟁 발발 5개월 전인 1971년 7월 6일 "이스라엘 무기 확보가 인도에 매우 중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본국 외무부에 보냈다.

그의 제안을 즉각 수용한 간디 총리는 인도 해외정보기관인 R&AW에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통해 이스라엘 무기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어떤 종류의 무기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도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반대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을 줄곧 지지해왔다. 그래서 이스라엘과는 수교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스라엘도 그 무렵 무기난에 시달렸지만 당시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는 이란에 대비해 비축해 놓은 무기를 인도에 기꺼이 공급키로 결정했다. 메이어 총리는 그 대가로 인도와 수교하길 바랐으나 수교는 21년 뒤인 1992년에 이르러서야 이뤄졌다.

라가반의 책에는 이란과 파키스탄이 '파키스탄 카라치가 인도군 공격을 받으면 이란이 개입한다'는 내용의 비밀협약을 맺었으나 이란은 그럴 경우 인도와 우호적인 소련 측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협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간디 총리가 전쟁 과정에서 중국이 개입할 것으로 우려했지만 중국 주재 인도 대사관 측은 본국에 '중국이 전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저자 라가반은 특히 파키스탄과 가까웠던 미국이 인도를 위협하려고 7함대를 인도 근해에 파견한 것은 비생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7함대가 도착하자마자 인도는 공세를 강화해 동파키스탄 중심지인 탕가일에 병력을 투하, 수도 다카로 진격시켜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 전쟁에는 미국 등 외세가 일절 개입하지 않게 됐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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