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일 목요일

인도가 21세기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며 선택하는 학과는?



국내 힌디어(인도어)계의 대부가 강단을 떠난다. 오는 8월 정년퇴임을 하는 한국외국어대 인도어과 이정호(65) 교수. 이정호 교수는 국내에 힌디어를 소개, 보급한 개척자다. 힌디어는 북인도를 중심으로 사용되는 인도 최대 언어다.

이 교수는 한국외대에 인도어과가 생긴 1972년에 인도어과 1회 입학생으로 발을 디뎠고, 1976년에는 한국인 첫 인도 정부 장학생으로 발탁돼 인도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그의 인도어 연구와 보급은 쉼 없었다. 1995년에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힌디어·한국어 사전’을 편찬했고, ‘힌디어문법’ ‘힌디어회화’ 등 힌디어와 관련된 효시가 되는 책들을 내 왔다.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인도 정부로부터 공로상(Hindi sevi Samman)을 수상했다. 이 상은 힌디어의 발전과 인도문화를 연구·소개한 외국 학자에게 주는 상으로, 매년 단 한 명에게 대통령이 직접 수여한다. 1996년에는 세계힌디어학회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 7월 24일, 퇴임을 목전에 둔 이정호 교수를 만났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분야에 뛰어들어 힌디어 보급에 앞장서온 40여년. 그에게 퇴임 소감을 물었다. 그는 “40년 전에 비하면 완전히 딴 세상”이라는 표현으로 말을 뗐다. “그때는 인도에 대해 잘 몰랐다. 역사책에서 본, 의료단을 보내는 나라 정도가 인도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최근 인도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인도어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다. 후학도 많이 늘었다. 인도와의 인적·물적 교류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을 보면 뿌듯하다. 강단을 떠나지만 서운하지 않다. 더 훌륭한 후학들이 힌디어 보급에 힘써줄 것을 믿는다.”

◇ 사용자 숫자 기준 세계 4위의 언어

힌디어의 아이러니가 있다. 언어 사용자 수가 많고, 경제 규모 면에서 인도는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주류 언어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힌디어는 사용자 수 기준 전 세계 4위의 언어다. 중국어, 스페인어, 영어에 이어 세계인이 많이 사용하는 언어로 꼽힌다. 또한 2010년부터 인도는 우리나라의 10대 수출 대상국에 꼬박꼬박 편입됐다. 하지만 힌디어에 대한 인식은 다른 외국어에 비해 낯설고 까마득하다. 힌디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이정호 교수의 말에 따르면, 국내에 힌디어를 가르치는 학과가 있는 대학은 단 세 곳, 한국외대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부산외대가 전부다. 정원이 30명 정도이니 한 해에 힌디어를 배우러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은 100명 내외다. 이정호 교수의 말이다.

“힌디어의 위상은 점점 높아질 거다. 인도 중앙 정부에서 힌디어 확대를 위한 노력을 수십 년 전부터 해 오고 있고,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로는 힌디어로 된 영화산업 부흥을 통해, 국외로는 인도 국비 장학생 확대를 통해서다. 힌디어 사용인구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12억 인도 인구의 70~80%가 힌디어를 쓴다. 또한 힌디어는 인도에서만 쓰는 언어가 아니다.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인도의 이주민들이 힌디어를 사용한다. 네팔이나 파키스탄의 통용어이고, 피지나 모리셔스, 남아프리카 등에서도 통용어로 쓰인다. 10억명이 넘는 인구가 힌디어를 쓰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인도의 지역 전문가가 되려면 힌디어가 필수”라고 말했다. 흔히 ‘인도에서는 영어만 잘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라고. 그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인구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도 전체 인구의 1~2%밖에 되지 않는다”며 “능력 있는 중간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힌디어를 알아야 한다.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네들끼리는 힌디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능한 조직 관리자가 되려면 힌디어가 필수”라고 말한다.

그는 힌디어에 대해 달라진 위상을 신입생의 자기소개서에서 본다. 최근 한국외대 인도어과에 입학한 신입생 중에는 “인도가 21세기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주위의 조언을 듣고 지망했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정호 교수는 “인도가 가진 인적자원으로 본다면 인도의 전망은 앞으로도 밝을 것”이라며 “인구 규모 면에서도 엄청나지만 인도인의 두뇌는 세계적으로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말했다.

◇ 막연한 호기심으로 결정한 인도어과 선택


이정호 교수는 경북 상주 출신이다. 한국외대 인도어과를 택한 건 막연한 호기심이었다. 역사책에서 본 신비의 나라 인도. 인도어과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보자’는 열정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첫 은사는 인도의 델리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돌아온 고 박석일 교수. 이 교수는 한국외대 인도어과 졸업 직후 인도 국비유학생 1호로 선정돼 유학길에 올랐다. 힌디 교육센터(Central Institute of Hindi)에서 2년간 배운 후 네루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미룻(Meerut)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개척자에게 기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1981년 귀국하자마자 한국외대 전임교수가 됐다.

그는 1995년 국내 최초로 ‘힌디-한국어사전’을 펴냈다. 1172쪽에 달한다. 교육부 지원을 받아서 낸 책으로 편찬에만 꼬박 10년이 걸렸다. ‘개척자’ ‘선구자’ 등의 표현을 부담스러워하며 “때를 잘 만나서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 하던 그는 사전 이야기가 나오자 달라졌다. 편찬과정의 고충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다른 희귀어 사전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델이 없어서 상당히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편찬된 지 18년이 지났지만 이 사전은 여전히 국내 유일의 힌디-한국어사전이다.

“힌디-영어사전을 모델로 만들었다. 영문 전체를 번역한 후 우리말 환경에 맞게 다시 사전을 만들어야 했다. 기본 한 단어당 A4용지로 카드를 만들고 파생어 20~30개씩 띠지를 만들어 붙였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놓은 A4용지의 높이가 족히 30㎝는 됐다. 학과 학생 수십 명의 도움을 받았다. 대표적인 학생이 부산외대 박장식 교수다. 당시 조교로 있으면서 많은 도움을 줬다. 인쇄도 난관이었다. 힌디어 자모가 없어서 용산에 있는 작은 출판사에 가서 자모를 새로 만들어 인쇄해야 했다.”

이정호 교수는 마하트마 간디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07년에는 ‘아힘사’를 펴냈다. 아힘사는 간디가 실천한 비폭력 사상으로, 인도인들에게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정신적 유산이다. 이 교수는 정년 퇴임 즈음 ‘마하트마 간디 평전’을 낼 계획이다. 그는 “기존의 간디 평전이 1920년대 간디가 쓴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이번에 내는 책은 그 이후부터 1948년 간디가 사망하기까지의 행적에 무게를 둔 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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