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7일 화요일

‘알바’도 마다 않는 위기의 중년 실업자들

프랑스에서 중년층 실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 공장 폐쇄 등으로 중년층이 일자리를 잃었고, 정부는 중년층 일자리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 8월7일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방데 주의 고용센터를 방문했다가 한 50대 여성을 만났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부모 집에 얹혀사는 나탈리 미쇼 씨였다. 그녀의 사연이 언론을 타면서 프랑스 전역이 ‘중년 실업’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이후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미쇼 씨는 “나는 일자리를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청년 실업에만 몰두하는 대통령이, 아직 15년 이상 살아야 하는 중년층의 실업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길 바랐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싱글맘’인 그녀는 50세까지 고등학교 관리인, 농업센터나 유아원 직원 등 다양한 직종에서 짧게는 4개월, 길게는 2년 정도 계약직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번 돈으로 월세, 인터넷 사용료, 아들 교육비 등을 감당해왔는데, 50세를 넘기자 더 이상 일을 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1년6개월 동안 청소부, 판매원 등 온갖 종류의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퇴짜 맞기 일쑤였다.

게다가 2012년부터 실업수당이 줄어들면서 미쇼 씨는 월세를 낼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결국 노부모가 사는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오랜 기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들이 공통적으로 ‘아무리 경제위기지만 결국 내가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자괴감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이어서 닥치는 게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쓸모없는 자’라는 외로움이다. 이는 프랑스 140만 중년 실업자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아우성으로 해석되었다.

청년 실업에 가려진 중년층 실업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실업 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진 세대는 당연히 청년층이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청년 실업은 경제위기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고질적인 사회문제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80만명가량의 청년이 고용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특히 이들 청년 세대를 두고 ‘희생당한 세대’라는 시각이 보편화하면서, 청년 실업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부각되어왔다.

이를 반영하듯 올랑드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핵심 정책과제를 ‘경제성장’과 ‘청년 고용 창출’로 정했다. 지난 5월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한 정국 운용 방안에는, 청년 일자리 15만 개를 만들어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에 쉽게 편입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 지난 6월 유럽연합의 대표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청년 실업을 타파하기 위해 2년 동안 6억 유로(약 8909억원)를 중소기업 설립 지원 같은 청년 고용 창출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경제위기 이후 5년이 지나도록 경제회복이 지체되면서 실업과 관련된 사회적 관심이 청년에서 중년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청년 실업에 가려졌던 중년층 실업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이다. 이런 흐름의 상징적 사례가 바로 나탈리 미쇼이다.

프랑스의 경우, 미쇼 같은 중년층(55세 이상)의 실업률이 2008년 이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이 2008년 이후 크게 상승하지 않는 것과 대조된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가 지난 6월13일 발표한 <고용과 보수>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실업은 모든 세대에 해당되는 사회문제이지만 가장 두드러진 세대는 중년층이다.

55~64세 중년층에서 유럽연합의 평균고용률이 46.3%인 데 비해 프랑스는 39.7%에 그친다. 프랑스 국내로 제한하면, 55~59세 중년층 실업률이 36%(2011년 말 현재)로 청년 실업률보다 훨씬 높다. 프랑스 국립통계연구소는 중년층 실업률이 이렇게 높은 것에 대해 통계 산출 방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법률적 은퇴 연령인 60세 이전 은퇴자(57~60세)들의 경우, 예전에는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2009년부터 이들을 실업자로 등록해 사회보장 혜택을 제공하면서 통계상 중년 실업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년 실업이 실제로 대폭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경제위기에 따른 기업들의 구조조정, 공장 폐쇄 등으로 중년층이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떠나야 했고, 기업들은 50세 이상 중년층을 좀처럼 고용하지 않는다. 더욱이 정부도 중년층에 대한 일자리 대책은 거의 내놓지 않는 형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주로 학생 등 젊은 층의 여름철 단기 아르바이트였던 호텔 청소원, 판매원, 포도 따기 등에 중년층이 몰렸다. 지난 4년 동안 여름철 ‘단기 알바’에서 중년층이 차지한 비율이 무려 30%에 달한다. 은퇴자는 물론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중년층이 임시방편으로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경우다.

올해 말 프랑스의 실업률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역대 최고치였던 10.8%에 근접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올랑드 대통령은 계속 상승세인 실업률 그래프의 곡선을 연말까지 끌어내리겠다고 단언했다. 문제는 84%에 이르는 프랑스인들이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신뢰할 수 없는 정부, 프랑스를 떠나려는 이들

정부 정책에 대한 실망과 불신 속에서 실업과 직접 맞서야 하는 프랑스인에게 프랑스는 예전처럼 더 이상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일자리를 찾는 실업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청년 세대들의 해외 진출 시도는 두드러진 현상이다. 고학력자 가운데 27%가 해외 근무를 고려한다는 조사가 이를 말해준다. 이들은 중국·일본·인도 등 아시아 지역이나 뉴질랜드·오스트리아 등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1년 정도 해외에서 인턴십이나 워킹 홀리데이 등으로 경험을 쌓거나 아예 장기 체류를 원하는 것이다. 청년 세대가 해외 진출을 선호하는 것은 여행과 일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도 한몫한다.

늘어나는 해외 진출에 대해 프랑스 사회는 걱정스럽다는 반응이다. <르 피가로>가 4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능력 있는 인재들이 국내를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프랑스인 75%가 염려스럽다고 답했다. 한편 야당 측은 이런 상황을 방치한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한다. 프랑스 사회 시스템이 더는 개인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 경제위기 속에서 심화된 실업 문제가 프랑스라는 국가의 근본적인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기사 출처 :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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