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9일 목요일

SNS의 두 얼굴 보여준 '헬스 카레(health care)' 사건




-사건의 시작은
의사·병원 비판하는 책 써 5만부 팔린 '의학 비평 작가'… '카레로 관절염 치료' 글 게재
-황당한 결말
진위 의심한 '네티즌 수사대'… 인용했다는 타임誌 원문 탐색
카레란 말 없고 'care'만…
-두 얼굴의 SNS
'자칭 전문가' 넘치는 인터넷… 잘못된 정보 확산도 빠르지만 전문가 집단보다 검증도 빨라

'Be careful=카레로 가득 채우세요' 'careful=카레를 많이 먹어 배가 부른' 'career=카레 만드는 사람'….

요즘 인터넷에선 '카레 놀이'가 한창이다. 'care(돌봄)'를 철자 그대로 '카레'라고 읽어서 단어를 조합한 '신종 카레사전'이 트위터에 떠다닌다. 일명 '허모씨 카레 사건'.

헬스 케어가 건강 카레?

발단은 이렇다. 자칭 '의학 비평 작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허모씨는 얼마 전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미국 의사 클라우디아 월리스는 오랫동안 관절염으로 인한 통증으로 고생하던 그의 환자 페니 리코프를 화학 약물이 아닌 자연 음식인 카레(curry)를 통해 치료한 사연을 2005년 2월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 공개했다"는 내용이다.

허씨는 의사와 병원을 비판하는 책을 써온 저자. 지난해 가을 출간된 책은 5만부가 팔렸고, 올해 출간된 책도 '건강'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트위터 팔로어는 6600여명.

이 글 역시 인터넷에서 금세 퍼졌다. 한 네티즌이 "카레로 관절염이 치료되다니 놀랍다. 자세히 설명 좀 부탁드린다"는 글을 올리자 허씨는 "카레뿐 아니라 천연물질은 어느 것이든 면역력을 회복시키기 때문에 관절염, 골다공증, 각종 암 등 모든 질병을 치료해준다"고 답했다.

그러다 누군가 의혹을 제기했다. "당신이 말한 타임지 기사에는 카레의 '카'자도 안 나온다. 오히려 만성 통증에 대한 적절한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트위터 이용자들은 직접 기사 원문을 찾기 시작했고, 누군가 "설마 혹시 이거냐"라며 기사 중 '헬스 케어(health care·건강 관리)'가 등장하는 대목을 찾아낸 것. 허씨는 순식간에 '공상소설 작가' '카레 허○○ 선생'으로 불리며, 네티즌의 '카레 조롱'이 시작됐다.

경력에도 의혹

그가 소개한 기사의 옳은 번역은 이렇다. "약물에 부작용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환자에게는 약물 치료(care)가 필요하다." 허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5개의 자료를 놓고 정리해 쓰는 과정에서 실수로 '카레'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기사에 '인도의 전통음식'이라는 용어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인도의 전통음식인 카레'라고 잘못 썼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네티즌의 조롱은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허씨는 이미 5만부가 팔린 책에서도 카레의 자연 치유 효능을 말하면서 이 기사를 근거로 제시했다. 출판사 측은 뒤늦게 "잘못된 부분이라 개정판에선 그 부분을 빼려고 한다"고 했다.

허씨의 경력도 논란이 되고 있다. 허씨는 책에서 '기자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해왔다. 허씨는 "모 신문사 인사부와 광고국 출신인데 출판사에서 '기자 출신'이라고 하는 게 효과가 세다고 했다"며 "4쇄 개정판부터 경력을 수정했다"고 했다.

인터넷의 자정 기능 효과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트위터로 흥한 자, 트위터로 망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말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넘쳐나는 '자칭 전문가'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 의학계나 주류 언론 대신 '네티즌 수사대'가 자체 검증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인터넷의 자정 기능도 보여준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허씨가 쓴 선정적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게 의료계 전반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불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며 "잘못된 정보가 떠돌아다니지만, 한편으론 여럿이 달려들어 전문가 집단보다 '빨리' 검증하고 바로잡는 기능도 발휘되는 인터넷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