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7일 월요일

'모디웨이브' 낡은 제국 인도를 깨운다

유권자 8억여명, 최대 민주주의의 실험장…인도총선

10년만 정권교체 확실시…야당에 경제 발전 기대감


인도 총선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인도 수도 뉴델리 시장의 풍경. ©News1 최종일기자

공간만 있으면 끼어든다. 차선은 있으나 마나이다. 곳곳이 패인 도로에서 차량의 속도는 여간해선 50km를 넘지 못한다. 마루티 스즈키의 '스위프트'와 현대차의 '아이텐(i10)', 타타(Tata)의 버스들 사이로 우마차가 느릿느릿 지나가고 오토바이와 삼륜차 오토릭샤는 좁은 틈을 종횡무진한다.

시민들의 무단횡단은 일상이다. 사이드미러를 닫은 채 주행하는 차들도 많다. 깜빡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경적이 이를 대신한다. 트럭 뒤꽁무니에는 으레 '경적을 울려주세요'라는 뜻의 'Horn Please', 'Blow Horn'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거리에는 귀를 먹먹하게 하는 경적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외국인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인도의 도로 문화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인 12억 인구에 힌두교와 이슬람교, 시크교 등이 뒤섞여 갈등이 끊이질 않는데다 공무원들의 부패와 관료주의는 만연해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세계부패지수 순위에서 인도는 지난해에 94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전이 발생하고 멀쩡한 포장 도로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공공 인프라는 부실하고 물가는 고개를 숙일줄 모르고 있다. 성장률은 지난 10여년 내 가장 둔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브릭스(BRICs: 브라질·인도·러시아·중국)의 핵심 주자라는 명성에는 켜켜이 먼지가 쌓였다.

◇8억여명 유권자 참여하는 총선, 내달 시작

인도에서 정치 혐오증과 높은 정치 관심이 동시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풀어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 최대의 민주주의 선거인 인도 총선을 한달 앞두고 인도에서 변화를 열망하는 정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지난 5일 인도 중앙선관위가 총선 일정을 발표하면서 인도 전역에서는 총선 열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현지 방송에서는 주요 정당 유세 소식을 메인 뉴스로 매일 전하고 있으며, 신문에서는 여러 면에 걸쳐서 총선 소식을 알리고 있다. 후보들의 광고판도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0억이 넘는 인구에 땅덩이가 넓어 선거는 한달 이상 동안 치러진다. 이번 16대 총선은 다음달 7일부터 5월 12일 사이에 세계 최다인 8억1400만명의 유권자가 하원의원 543명을 9일 동안 뽑게 된다. 유권자가 많다보니 93만개의 투표소가 설치되고 공무원 1100만명이 동원된다.

법정 선거비용은 6억4500만달러(약 6900억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인도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각 정당이 쏟아붓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인도 연구기관인 센터 포 미디어 스터디스(CMS)는 이번 총선의 총 선거 비용이 49억달러(5조 245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개표는 5월 16일 진행된다.

◇경제발전 기대감에 확산되는'모디 웨이브'

1)자이푸르 과일상이 모디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을 걸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2)모디의 선거 문구가 붙어 있는 승합차 3)버스 정류장에 있는 모디의 선거 광고 4)'모디 웨이브'를 보도하는 인도 현지 신문(시계 방향으로) © News1 최종일기자

이번 선거 돌풍의 주역은 제1야당 인도국민당(BJP)이다. 10년만의 정권 교체가 확실시되기 때문에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지난 7일 뉴델리에서 만난 30대 택시 기사는 인도국민당의 총리 후보인 나렌드라 모디(64) 구자라트주(州) 지사가 "총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를 지지하는 이유로 "주지사로서 많은 일을 해냈다"며 인도 전체가 구자라트처럼 발전하길 바랐다.

인도 서부에 있는 구자라트주의 총생산(GDP)은 모디가 2001년 지사로 취임해 3차례 연임하는 동안 평균 13.4%의 성장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인도의 7.8%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친기업적 정책과 관료주의 척결로 포드와 마루티 스즈키, 타타 모터스 등 자동차 제조업과 태양광 발전 등의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빗물수집과 관개 시설을 개량해 농업생산액은 집권 1년차 때 900억루피에서 지난해에는 1조1200억루피로 늘어났다.

타지마할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아그라에서 만난 50대 숙박업 종사자는 지난 9일에 "모든 사람이 모디를 좋아한다"며 그의 총선 승리를 확실시했다. 델리 시내에서는 '차기 총리는 모디(Modi for PM)'라는 문구가 붙은 차량이 자주 눈에 띄었다. 라자스탄주(州)의 주도인 자이푸르에선 한 과일상이 모디의 얼굴이 붙은 현수막을 걸어놓고 장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과일상은 모디의 사진을 가리키자 "모디"를 연호했다. 현지 언론들은 모디의 인기를 "모디 웨이브(Modi Wave)"라고 부르고 있다.

지지율은 모디의 인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인도 방송 NDTV가 지난 14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도국민당은 195석으로 단일 정당으로는 최다 의석을 획득하고, 집권 여당인 국민회의당(INC)은 106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망치는 두 당 모두에 신기록이다. 인도국민당은 34년 정당 역사에서 182석이 종전 최다였으며, 국민회의당은 1999년 114석이 최저였다.

다만, 인도국민당이 주축이 된 민족민주동맹(NDA)이 과반은 확보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족민주동맹은 545석인 인도 하원 로크 사바(Lok Sabha)에서 229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과반을 차지하려면 272석이 필요하다. 하원 의석은 총 545석이며 2석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국민회의당 주도 정당연합체인 통일진보연합(UPA)은 의석이 126석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격차 못 좁히는 인도 정치 황태자

라울 간디 인도 국민회의당 부총재 © AFP=News1

집권 국민회의당의 경우, 잇따른 비리 사건과 서민들의 생활을 팍팍하게 하는 높은 물가, 경제 성장 둔화 등으로 지지율이 급감했다. 여당의 후보로 확실시되는 라울 간디(43) 국민회의당 부총재는 인도 독립 이후 67년 동안 대부분의 시기에 인도를 통치한 네루-간디 가문의 정치 황태자이지만 정당의 인기 하락과 짧은 정치 경험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라울 간디의 증조부는 인도의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이며, 외조모는 네루의 무남 독녀이자 1984년 시크교도인 경호원의 흉탄에 숨을 거둔 인디라 간디 전 총리이다. 부친은 인디라 간디 사망 뒤 총리에 오른 라지브 간디로, 라지브 간디 역시 1991년 유세 중에 폭탄 테러로 숨졌다. 모친은 라지브 간디의 부인인 이탈리아 출신의 소냐 간디 국민회의당 총재이다. 인도 정계의 최고 실력자 소냐 간디는 현재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모디는 간디 모자에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모디는 이달 초 한 유세에서 소냐 간디가 외국 출신임을 공격하며 소냐와 라울은 '간디 가문의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이 같은 공격은 유권자들에게 먹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 만난 뉴델리의 한 현지 여행사 대표는 "소냐 간디는 정부 내 이탈리아 마피아"라면서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모디 집권시 종교 간 갈등 재현 우려

이슬람교도들에 둘러싸여있는 모디 © 모디 페이스북

라울 간디는 이에 맞서 2002년 구자라트 대학살을 반격 카드로 꺼내들면서 모디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라울은 힌두교 국수주의자인 모디가 2002년 구자라트에서 종교 간 폭동이 발생해 1000명 이상의 이슬람 교도들이 극우 힌두교도들에게 살해됐을 때에 이를 방치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현지 언론 인디언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라울 간디는 지난 11일 유세에서 "히틀러는 국민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교만한 자였다. 그는 자신이 모든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인도에도 이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리더는 교만해선 안된다"고 모디를 간접적으로 겨냥했다.

모디의 대학살 방조 혐의와 관련해 인도 대법원은 증거 부족으로 기소하지 않았지만 대다수 이슬람 교도들에게 모디는 증오이 대상이다. 자이푸르에서 오토릭샤를 몰고 있는 한 이슬람교도청년은 지난 8일 모디에 대해 묻자 "까띨(qaatil)"라고 비난했다. '까띨'은 인도 북부에 사는 이슬람교도의 제1언어인 우르두어로 '살인자'를 의미한다. 그는 다문화, 다종교를 내세우는 "라울 간디가 총리로 더욱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힌두교도가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고 이슬람교도는 13%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자라트 대학살 방조 혐의가 모디 대세론을 바꿔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슬람교 기업인 상당수는 경제 부흥을 이유로 모디를 지지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모디 측은 2012년 선거에서 이슬람교도 중 31%로부터 지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인도 인근 마투라 인근 거리 풍경 © News 1 최종일기자

모디 대세론에는 우려도 따른다. 모디가 총리에 오르면 인도 내부에서 종교 간 심각한 갈등이 터져나오고 앙숙인 파키스탄과 인도의 사이가 다시 틀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독일 방송 도이체벨레는 인도에서 이슬람세력이 분리 독립한 파키스탄에선 다수가 모디를 증오하고 있으며, 이번 선거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 식민지배에서 각각 분리독립한 이후 카슈미르 영유권을 놓고 두차례 전쟁을 벌였다. 2008년 뭄바이에서는 파키스탄 테러단체가 폭탄테러를 가해 166명이 사망했다.
<기사 출처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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