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일 수요일

아시아 저개발국가 시민의식 잠깨다… 공산주의·독재 딛고 NGO 활동 ‘기지개’

미얀마 동남부 작은 도시인 다웨이. 태국과 국경을 접한 칸차나부리 지방에서 160㎞ 떨어진 곳에 있는 이곳은 미얀마 정부가 2010년부터 이탈리아와 합작해 공단을 조성하면서 심해항만과 철도, 도로 등 주요 인프라 구축을 추진키로 결정한 지역이다.

다웨이 개발은 총 사업비용만 580억 달러(약 72조7594억원)에 달하는 동남아 최대 개발 프로젝트다. 한국 역시 진출을 검토했었다. 주요 발전소와 같은 인프라 구축이 2010∼2015년 사이 진행되며 2016년부터는 정유시설과 석유화학공장, 철강 및 비료공장 등 중공업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의 야심찬 계획은 최근 중단되다시피 했다. 석탄을 원료로 한 화력발전소 건설에 시민단체와 주민이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강력 반발하면서 공사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군부가 오랫동안 집권했던 미얀마에서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 일이 가능하도록 한 사람은 바로 시민활동가인 코레이르윈(46)씨다. 성별 구분 없이 입는 치마인 사롱과 선글라스를 낀 그는 원래 항공사에서 회계를 담당했다. 그는 현재 다웨이 프로젝트 중단을 위한 맹렬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석탄발전소 건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공해피해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평생을 농사만 해온 주민들을 위해 토지 보상금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런 노력 덕분에 주민들은 코레이르윈씨의 편에 섰고 현재 발전소 건설은 보류된 상태다. 코호량 미얀마 대통령실 비서관은 “우리는 성장뿐만 아니라 환경보호 등의 문제들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레이르윈씨 같은 시민운동가의 활약은 미얀마뿐 아니라 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통신기술 발달로 시민단체 결성이 용이해지면서 그동안 활동이 뜸했던 아시아 국가에서 비정부기구(NGO) 활동이 활발해지고 NGO 수 역시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산주의나 독재국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그동안 공산주의나 독재국가에서는 NGO 활동이 미약했다. 미얀마의 경우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 수감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베트남, 미얀마같이 오랫동안 공산주의나 독재에 시달려 왔던 국가에서 NGO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중국 역시 정치 분야가 아닌 환경을 중심으로 NGO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환경뿐만 아니라 동성애와 정치 문제로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 리타이토 공원에서는 1000명 가까운 젊은이들이 무지개 빛깔 스카프와 깃발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무지개색은 게이와 레즈비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들은 베트남 내 동성애자의 권리 신장을 위한 플래시 몹 행사를 치른 것이었다. 플래시 몹은 수도인 하노이를 비롯해 경제중심지인 호찌민과 중부 다낭, 메콩델타 지역의 중심도시인 껀토 등 베트남 전국에서 일어났다.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베트남에서 금기나 다름없는 동성애 관련 행사가 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행사를 기획한 르꾸억 빈(40)씨는 “베트남에서는 공안법에 따라 5명 이상의 집회는 허가받지 못할 경우 엄격히 금지된다”며 “하지만 우리는 이번 플래시 몹 행사를 놀이의 일환으로 관리들에게 설명해 개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2010년에는 노천 보크사이트 광산 채광을 놓고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되자 베트남 지성인 130명이 집단으로 반대시위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예전 같으면 공산당에 도전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만한 일이었다. 

중국 역시 환경 문제를 중심으로 시민운동이 활발하다. 지난해 7월 쓰촨성 스팡에서 몰리브덴·구리 합금공장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를 주도한 사람은 주로 90년대 이후 출생자로 홍콩 언론은 90년대생을 일컫는 주링허우가 환경보호와 권리수호의 선봉에 섰다며 이들을 주목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정치 영역까지 활동 폭을 넓혔다. 시민단체 버시(Bersih)는 지난달 치러진 선거에서 투명선거를 강조했다. 비록 야당이 패하긴 했지만 엠비가 스리네바산 버시 총재는 “우리들의 운동이 유권자가 투표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1998년 800개에 불과했던 NGO가 최근에는 무려 2만개 이상 증가했다. 

인터넷 보급·정보 공유가 NGO 활동 확산의 원동력

아시아 각국에서 시민운동이 활발해진 원인으로 기술 발전을 꼽고 있다. 나라별로 국민들이 정치적 참여에 대한 열망이 높아진 것과는 별도로 인터넷이 포함된 통신기술 발전이 시민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3G 휴대전화 보급으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정보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쉽게 공유한 것이 시민단체를 결성하는 데 용이하도록 만들었다. 지난해 2분기 아시아에서 인터넷 사용 인구는 10억명으로 유럽의 2배, 미국의 4배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화장실 개수보다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더 많으며, 인도네시아의 페이스북 사용자 수는 미국과 브라질, 인도 다음이다. 

말레이시아 시민활동가 에딘 쿠는 “시민사회그룹은 점차 공공참여와 민주주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며 “선거와 같은 정상적인 정치 채널에 대해 좌절감을 느낀 사람들이 시민운동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보기술(IT) 평론가이자 작가인 에브게니 모로조프는 “인터넷이 해방을 위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들 국가의 NGO 활동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 국가에 속한 NGO는 직접적으로 정부와 대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경우 정부 비판에 나섰다는 이유로 유명 블로거가 한 달 사이 3명이나 체포됐다. 17일에는 반체제 블로거인 딘 우이(30)가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14일에는 역시 유명 반체제 블로거인 팜 비엣 다오(61)가 국가 이익을 침해했다며 경찰에 체포됐다.

동성애 플래시 몹 행사를 기획한 빈씨 역시 게이의 성적 차별대우 문제 등을 제기하지만 절대로 공산당의 정당성 문제 등을 거론하지는 않는다. 그는 “정부와 굳이 대척점을 만들지 않는다”며 “우리는 평등과 차별, 인권 등에 대해 정부와 협력을 통해 권위적인 베트남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하노이에서 NGO와 일하는 한 서방 외교관은 “NGO 스스로가 레드라인이 어디인지 잘 알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간 갈등이 부담스러워 NGO 활동을 용인하는 측면도 있다. 지난 3월 남중국해에서 중국 함정이 자국 어선에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하자 반중 시위가 봇물을 이뤘다. 물론 베트남 정부는 이를 용인했다. 

개방화 바람이 불고 있는 미얀마도 시민단체가 활동할 만큼 자유화됐지만 이런 흐름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이슬람 사회에 대한 증오심으로 번지고 있는 것. 이슬람교를 믿는 로딩야족에 대한 폭력으로 인해 8만명 이상이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미국 노던일리노이대의 마이클 뷜러 교수는 “시민단체가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단시간 안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며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결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고 분석했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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