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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3일 금요일

인도 군 당국, 에베레스트 대청소 나서


Nepal Everest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물품을 공급하고 돌아오는 야크 캐러밴(AP=연합뉴스)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산이 각국 등반대가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자 인도군이 현지에 전문요원들을 파견해 '대청소'에 나선다. 

산악 전문요원 34명으로 구성된 인도군 등반대는 4일 네팔 카트만두로 출발해 다음 달 중순 현지 셰르파와 함께 두 팀으로 나눠 에베레스트(8천848m)와 로체(8천516m)에 올라 쓰레기 수거에 나선다고 CNN 등이 3일 보도했다.

등반대는 해발 6천m 이상에서 정상에 이르는 구간에 버려진 공기통, 텐트, 캔 등 4천㎏의 쓰레기를 수거해 베이스캠프로 옮길 계획이다.

베이스캠프에서 산 아래로 쓰레기를 옮기는 것은 다른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번 행사는 1965년 인도군 소속 M.S. 콜리가 이끈 등반대가 인도팀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성공한 지 50주년 된 것을 기념해 마련됐다.

등반대장을 맡은 란비르 싱 잠발 소령은 "안타깝게도 에베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장으로도 불린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클린 인디아'를 세계 곳곳에서 추진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에베레스트는 뉴질랜드 출신의 에드먼드 힐러리가 1953년 최초로 등정한 이후 60여 년간 4천여 명이 정상 등정에 나서면서 50여t의 쓰레기가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네팔 정부는 이달부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이상을 오르는 모든 등반자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8㎏의 쓰레기를 수거해 오도록 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3월 4일 수요일

인도 뭄바이, 소고기 갖고만 있어도 최고 5년형


2014년6월 8일(현지시간) 인도 알라하바드의 갠지스 강에서 힌두 축제인 두세라 축제를 맞아 힌두교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 가운데 한 여성이 소에게 경배의식을 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DB)

인도 최대 경제도시인 뭄바이가 있는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소고기 도축·판매는 물론 단순히 가진 것만으로도 처벌되게 됐다.

프라나브 무케르지 인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소를 도축하거나 소고기를 판매·소지하면 최고 5년의 징역이나 1만루피(18만 원)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마하라슈트라 주 동물 보호법을 승인했다고 현지 일간 인디언익스프레스가 4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주 정부는 수 주 내로 이 법을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주 의회를 통과했지만, 그동안 대통령 승인을 받지 못했던 이 법은 물소(버펄로)를 제외하고는 암소, 수소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도축·판매·소지를 금지하고 있다.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도가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인도에서는 대부분 주에서 암소의 도축은 금지하지만, 수소 도축은 허용하는 주가 많다. 

마하라슈트라 주에서도 그동안 다른 주에서 도축된 소고기를 들여와 식당이나 상점에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힌두민족주의를 내세운 인도국민당(BJP) 소속의 데벤드라 파드나비스 마하라슈트라 주 총리는 "소 도축을 전면금지하는 소망이 현실이 됐다"며 환호했지만 주 안팎에서 이번 법 승인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 내 소고기 유통업자들은 법이 시행되면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며 법 시행을 저지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영국 BBC 뉴스는 전했다.

2014년12월 23일 인도 알라하바드에서 거리의 소들이 불가에 모여들고 있다.(AP=연합뉴스DB)

농가에서는 소가 일을 못하거나 새끼를 낳지 못하게 돼도 자연사할 때까지 계속 기를 수밖에 없게 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트위터에는 "인도에서는 젖소로 태어나는 것이 여자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등 이번 조치를 비판하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소고기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대부분 이슬람교도라는 점을 들어 소수 종교 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 교민사회도 이번 조치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뭄바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장석구 총영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찬반을 떠나 법이 시행되면 한국에서 소고기를 반입하다 뭄바이 공항 등에서 적발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며 "주재 기업과 교민들에게 이번 조치와 관련해 안내하고 주의를 당부하겠다"고 말했다.

뭄바이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인도 정부가 외국 기업의 투자를 바란다면서 외국인의 식생활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4년 4월 18일 금요일

제 2의 상하이, 인도의 뭄바이 여행

‘제2의 상하이’를 꿈꾸는 인도의 거대 도시, 뭄바이. 과거와 미래의 중간쯤에서 포착되는 충돌과 조화의 흔적은 뭄바이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1924년에 건설된 인도의 상징적인 문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게이트 웨이 오브 인디아’.




 

18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인도 미술품을 소개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내부.
아시안 무드가 물씬 풍기는 퓨전 레스토랑 ‘마마고토’.
새로운 인도 스타일의 상점 겸 레스토랑, ‘굿 어스’
레스토랑 겸 클럽, ‘토트 온 더 터프’는 시리 아키텍츠(Serie Architects)의 작품
 ‘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의 뒤쪽 정원에 조성된 타원형 모양의 수영장.
인도의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갤러리 ‘길드’.


 
인도영화 제작의 성지인 뭄바이 북서쪽으로 가다 보면 ‘발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많이 사는 반드라(Bandra)가 있다. 레스토랑과 펍, 화려한 매장들이 차츰 들어서면서, 현재 뭄바이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거리다. 반드라에는 천천히 머물면서 구경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 몇 군데 있다. 그중 팔리 빌리지 카페(Pali Village Cafe)와 근처에 있는 팔리 바반(Pali Bhavan), 하카산(Hakkasan), 마마고토(Mamagoto) 등은 인도를 떠나기 전에 꼭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반드라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요즘 가장 ‘핫’한 지역인 파렐(Parel)에 다다른다. 과거에는 산업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오래된 창고들을 개조해 낯설면서도 예술적인 지역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쇼핑하기에 환상적인 파렐에서 꼭 들러야 할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르 밀(Le Mill)이다. 르 밀은 인도 특유의 지역성과 국제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컨셉트 스토어로 20~30대에게 인기가 많다.

바 겸 레스토랑인 토트 온 더 터프(Tote on the Turf) 역시 가볼 만하다. 과거의 도박장을 현대적인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곳으로 열대우림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가 흥미롭다. 바다를 끼고 남쪽으로 더 내려오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콜라바(Colaba)에 도착한다. 인도의 역사가 깃든 콜라바는 뭄바이 여행의 중심지로 먹음직스러운 길거리 음식과 노점상, 카페 등이 늘어서 있어 떠들썩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Gateway of India 뭄바이의 대표적인 기념물 중 하나로 유럽에서 바다를 통해 인도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축물) 옆에는 1903년 무어 양식(중동 지방의 건축양식으로 기하학적인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으로 증축한 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Taj Mahal Palace Hotel)이 우뚝 서 있다. 콜라바의 북쪽에는 식민지 건축물들로 가득 찬 마을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는 갤러리들이 즐비하다. 이 지역은 특유의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쇼핑 플레이스가 많기로 유명한데, 800년대 후반에 완성된 건물 3층에는 리빙 소품과 패션 제품이 한 데 어우러진 방갈로 에이트(Bungalow Eight)가 있다. 밤에는 백 베이(Back Bay)만을 따라 형성된 마린 드라이브(Marine Drive) 거리를 걸으며 야경을 감상한다.



컨셉트 스토어인 ‘봄베이 일렉트릭’의 다양한 가구들.
반드라와 월리(Worli) 지역을 잇는 웅장한 ‘라지브 간디 시 링크’.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레드 버스.



뭄바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호텔인 ‘타지 마할 팰리스’의 내부. 에셔(Escher)가 설계한 방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과거 창고였던 르 밀은 전 세계 모든 디자인 가구를 만날 수 있는 숍이다.



WHY WE LOVE MUMBAI...

키란 라오(Kiran Rao)/프로듀서, 작가, 영화감독
봄베이(나는 아직도 이렇게 부르는 것이 좋아요)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어제나 활기가 넘쳐요. 무엇보다 이곳은 꿈의 도시에요. 사람들이 무언가에 끊임없이 도전하게 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도록 이끌죠. 다양한 사람들의 역동적인 일상과 투쟁하듯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배울 점이 많아요. 다른 한켠에는 치열함 못지않은 여유로움이 있어요. 볼수록 매력적인 도시에요.

모제즈 싱(Mozez Singh)/영화제작자이자 작가
나는 델리에서 태어나 보스턴에서 공부했고, 뉴욕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뭄바이에 살고 있어요. 유랑자 같은 삶이죠! 뭄바이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는 도시에요. 언제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동시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만드니, 한 가지 직업에 만족할 이유가 없어요. 엄청난 인구 밀도와 교통량만큼이나 에너지도 넘쳐나죠.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는 힘, 이것이 내가 뭄바이를 좋아하는 이유에요.

마니시 나이(Manish nai)/아티스트
뭄바이는 인도 전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로 가득해요. 우리 아버지 역시 내가 태어난 구자라트(Gujarat)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오셨어요. 요즘 뭄바이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내가 사는 보리발리(Borivali) 지역은 그 변화가 피부에 와 닿을 정도예요. 보리발리는 인도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역 중에서도 가장 큰 곳으로, 도시 특유의 지역 색에 국제 감각까지 더해져 풍족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요.

시물 자베리 카드리(Shimul Javeri Kadri)/건축가
요즘 뭄바이는 건축가들의 천국이에요. 새로운 건물들을 보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죠. 겉으로는 완벽한 도시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인구 중 67%는 아직도 판잣집에서 살고 있거든요. 특정 지역에는 여전히 낡은 건물과 공공지원 주택, 공공용지들이 남아 있어요. 훌륭한 사람들도 많지만 정치 계층의 부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유명 레스토랑이 넘치는 반면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기사 출처 : 엘르>

‘VJ특공대’ 쁘렘 씽, 인도 맨손 튀김의 달인 “온도 측정 위해”



‘VJ특공대’ 인도 생활의 고수


‘VJ특공대’ 인도에서 튀김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맨손 튀김의 달인’ 쁘렘 씽.


18일 오후 방송된 KBS2 ‘VJ특공대’에서는 ‘인도 생활의 고수들’을 만나봤다. 먼저 튀김가게를 방문했다.

쁘렘 씽은 맨손으로 튀김을 튀겨냈다. 펄펄끓는 기름 통에 손을 넣기도 했다. 한 관광객은 “나도 식당을 운영하지만 이렇게는 못 할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국 돈으로 100만원 이상을 번다는 쁘렘 씽은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개된 사람은 직접 바이킹에 시동을 거는 청년. 이 청년은 아이들이 앉아있는 사이로 발을 굴려 바이킹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밖에도 100kg도 번쩍 드는 기차역 짐꾼을 소개했다. 팔뚝에 차고 있는 허가증을 받아야 짐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또 우체국에는  흰 천과 바늘, 실로 이용해 완벽한 포장을 하는 우편물 포장사가 있었다.
<기사 출처 : TV리포트>

2014년 4월 6일 일요일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느낄 수 있는 곳, 배낭여행객들의 로망 ‘인도’


일출 직전의 갠지즈강. 사진=모두투어 자료 제공
매년 세계의 수많은 배낭여행객들이 인도를 찾는다. 그들이 인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티브 잡스 처럼 내면의 정신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일까? 그런 궁금증과 함께 인도 배낭여행기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2012년 여름, 짐승 냄새 나는 동생들과 함께 배낭 하나 메고 그 해 여름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열정과 젊음의 패기를 가득 품고 인도로 향했다.




캘커타 공항에 도착해 여행자들의 거리로 불리는 서더스트리트를 향해 가는 길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먹이를 노리는 들짐승처럼 덤벼드는 호객꾼들, 엄청난 인파로 붐비는 도시, 차선이 보이지 않는 도로에서 쉴 새 없이 들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불쾌한 악취와 함께 다양한 동물들로 가득한 거리,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집들, 동냥하는 아이들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이 여기기 때문에 길거리에 자유로이 풀어둔다.사진=모두투어 자료제공
인도의 첫인상은 충격적이었고 그런 이질감을 받아들이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정신 없이 보낸 하루를 달래러 간 식당에서는 인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인 커리와 탄두리 치킨을 맛보며 다양하고 독특한 인도의 음식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향신료가 첨가된 음식이 처음에는 자극적일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인도 음식 특유의 묘한 맛에 푹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캘커타는 동인도의 사상과 분화의 발산지로, 1912년 수도를 델리로 옮기기 전까지 인도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상상이상으로 발전된 도시, 대영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는 건축물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새벽에도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캘커타에서 보낸 첫날밤은 인도 전역의 대정전 사태로 인해 인도의 여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전날 밤의 악몽에서 도망치듯 델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땅 덩어리가 큰 인도에서 주요 이동수단은 기차이다. 요금에 따라 에어컨이 나오는 칸부터 선풍기만 있는 칸까지 다양한 등급으로 나눠지고 있다. 배낭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SL (Sleeper Class)칸은 3층 침실이 2개, 2층 침실이 1개로 한 구역을 이루고 있으며 긴 이동시간 동안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본 10~20시간 이동 시간은 기본이고 예고 없이 발생되는 연착은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가 된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거나 억지로 잠을 청하기를 반복하며 꼬박 하루를 기차 안에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머리 속에 온통 후회로 가득 찼다.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 때 “나마스떼” 하며 옆 칸에 있던 젊은 청년들이 말을 건넸다. 짧은 영어라도 이야기 꽃을 피우고 먹을 것도 나눠 먹으며 기약 없는 종착역을 기다렸다.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만난 그들로 인해 어두울 것만 같았던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되었다.

여행자들의 거리 빠하르간지는 언제나 많은 인파로 가득 찬다. 사진=모두투어 자료 제공
델리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빠하르간지에 숙소를 두고 일정을 시작했다. 거리에는 전통의상부터 각종 액세서리까지 다양한 인도풍 아이템들로 가득하다. 일명 알라딘 바지 한 벌을 구입하고 근처 한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빠하르간지를 걷다 보면 쉽게 한국 음식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인도를 찾는 한국인 여행객들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인도의 중심인 만큼 문화유산도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이다. 이슬람 건축물들이 많이 세워져 있는 델리에는 인도에서 제일 큰 이슬람사원인 자마 마스지드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붉은성, 연꽃 모양의 바하이사원이 있다. 델리에 가면 인도 근대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간디의 화장터인 라즈가트도 둘러볼 수 있다. 

델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극심한 빈부격차를 느낄 수 있다. 현대식 고층빌딩 근처에 낡은 판잣집,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 옆을 지나가는 누더기 옷차림의 노숙자, 이렇듯 상반된 세계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 델리이다.

다음 목적지는 인도에 오면 꼭 가보아야 할 곳이자 이슬람 건축의 완성판이라고 일컬어지는 타지마할로 정했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5대왕 샤자한이 죽은 왕비 뭄타즈마할을 기리기 위해 22년에 걸쳐 지은 무덤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극찬을 받는 타지마할은 인도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아그라에 위치해 있다. 

장엄하고 화려한 타지마할의 외관은 한참을 넋 놓고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사진=모두투어 자료 제공
타지마할의 건축가는 이란 출신의 이사칸으로 알려져 있고, 연인원 2만 명 이상이 이 공사에 동원되었다고 전해진다. 대규모의 건축 끝에 타지마할이 완성된 후 어디에서든 다시 특유의 아름다움을 재현하지 못하도록 건축가의 눈을 멀게 하고 손발을 잘랐다고 한다. 

대충 찍어도 화보가 되는 타지마할의 매력에 빠져 너 나 할 것 없이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며 사진 욕심을 부리게 된다. 대리석의 뜨거운 온기를 발바닥으로 느끼며 타지마할 내부로 들어갔을 때 평화롭고 신성하기까지 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그라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비싼 물가와 입장료 때문에 많은 여행객들이 당일로 투어를 즐기고 근처 도시로 이동한다. 하루라도 좋으니 인도에 왔다면 꼭 들려야 할 곳이 바로 아그라이다. 

여행 동선을 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바라나시를 여정의 마지막으로 두라는 조언을 들었었다. 한번 머물게 되면 떠나고 싶지 않게 만든다는 바라나시의 신비한 매력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갠지스강에 들어가 몸을 씻고 기도하는 인도인들의 모습. 사진=모두투어 자료 제공
바라나시가 유명한 이유는 인도의 어머니라 불리는 갠지스강이 있기 때문이다. 갠지스강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아침 일찍 강물을 가르는 보트를 타고 일출을 보거나 낮에는 가트 (갠지스강변에 있는 돌계단) 주변을 거닐다가 저녁에는 화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갠지스강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본인도 모르게 묘한 기운 속에 빠져들고 엄마 품속에 있는 것처럼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갠지스강은 인도 그 자체이며 인도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곳이다.

24시간 주검들을 화장하는 불길이 하늘을 치솟는 한편 위생적이지 않은 물을 마시고 몸을 씻고 빨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생과 사가 함께 공존하는 것처럼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곳이 갠지스강이고 바로 인도의 모습이다. 그런 기묘한 조우 속에 느껴지는 낯설거나 불편한 감정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인도를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정리=동아닷컴, 취재 협조 및 사진=모두투어 자료 제공
<기사 출처 : 동아닷컴>

인도, 최초의 모노레일 개통

인도 최초의 모노레일이 개통됐다.
코트라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4억9438만 달러를 투자해 지난 2월 쳄부르(Chembur) 역과 와달라(Wadala) 역을 잇는 최초의 모노레일을 개통했다.
모노레일 개통은 2009년 1월 프로젝트에 착수한지 약 5년 만이며 인도 대도시 지역 개발청(MMRDA; Mumbai Metropolitan Region Development Authority)에서 계획하고 시행했다.
뭄바이 모노레일의 개통된 노선(쳄부르~와달라)은 약 8.93km며, 7개의 정차역을 최고 시속 90km 평균 시속 65km로 운행한다.
모노레일은 5루피~11루피가량의 칩을 구매해서 표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2014년 3월부터 매일 오전 5시부터 24시까지 19시간 연속으로 운행될 예정이다.
쳄부르(Chembur)역부터 야곱 서클(Jacob Circle) 역을 잇는 계획된 총 노선의 길이는 약 20km이며 미완성 노선은 내년 하반기에 준공 예정이다.
인도 정부는 모노레일 개통으로 1일 예상 수송 인구가 12만5000명이 이를 것으로 예상, 뭄바이의 교통체증을 완화시켜 줄 것으로 내다봤다.
<기사 출처 : 전기신문>

2014년 3월 27일 목요일

인도의 베네치아 '알레피'... 환상적이

기사 관련 사진

서른하나.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고
그러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나이.

이곳 남인도 출신의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The God of Small Things)에 나오는 말입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그 지역과 관련 있는 소설 한 권을 미리 읽는다거나 혹은 여행 가방에 챙겨 넣어 여행하면서 읽는다면 훨씬 더 그 지역의 삶과 문화가 피부에 와닿을 수 있겠지요. 해서 나는 여행을 떠나면 늘 그 지역의 소설을 한 권쯤은 찾아 읽거나 여행 가방에 챙겨 넣고 가곤 합니다. 

예를 들자면, 발칸 반도 여행을 떠나면서는 보스니아 출신 소설가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를, 동유럽을 여행하면서는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을, 티베트와 차마고도를 여행하면서는 제임스 힐톤의 <잃어버린 지평선>을…. 뭐 이런 식으로 그 지역과 관련 있는 책 한 권을 읽게 되면 훨씬 여행이 더 흥미롭고 현지의 삶과 문화가 피부에 가까이 다가오게 됩니다.

이번 남인도 여행길에는 <마하바라타>나 <라마야나> 등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를 들추어 보기도 했지만, 이 책들은 너무 방대해서 짧은 여행 동안 읽기에는 무거운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서사시는 인도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들입니다. 

<작은 것들의 신> 훑어 보고 떠난 인도여행

<작은 것들의 신>은 그동안 인도여행을 몇 차례 여행하면서 대강 훑어 보기는 했지만, 완독을 하지는 못했던 소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남인도로 여행을 떠나면서 다시 이 책을 들추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룬다티 로이가 바로 내가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남인도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아룬다티 로이는 남인도 께랄라주 아예메넴에서 시리아 기독교도인 어머니와 힌두교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 배경을 소설화하여 그녀의 첫 작품으로 출간한 후 영국 최고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예메넴은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코친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소설은 이란성 쌍둥이, 에스터와 라헬의 경험을 좇고 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인 아무는 기독교도인으로 사회의 관례를 깨고 힌두교도와 결혼하지만,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와 친정에 얹혀살면서 쌍둥이와 함께 무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

로이는 <작은 것들의 신>을 통해 당시 인도 사회의 편협한 신앙과 위선에 대하여 날카롭게 풍자하고 전통적 신분제도인 카스트를 비롯하여 인도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로이가 성장한 께랄라 주는 당시 기독교, 힌두교 등 여러 종교와 공산주의가 공존하면서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요소가 상존했던 곳입니다. 소설은 공산주의와 낙살라이(인도 극좌정당) 당원들의 폭동이 확산되어 전통적 카스트 제도를 뒤흔들며 두려움이 고조되는 가운데 일어난 두 주일간의 이야기입니다. 

로이는 께랄라 사회라는 닫힌 세상 속에서 카스트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을 하면서도 '사랑의 법칙'은 카스트 제도 하에서뿐만 아니라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 문명에 존재한다고 갈파합니다. 이는 유태인 출신인 케르테스 임레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첫 소설 <운명>의 내용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임레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아우슈비츠 감옥에서조차도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서른한 살을 살아오기까지 방황을 하며 한 번쯤은 죽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서른한 살이라는 나이는 인생항로의 어느 시점에서나 맞이 할 수 있습니다. 이곳 께랄라주를 여행하면서 내가 굳이 로이의 소설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들의 처지도 어쩌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슷한 단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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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로유람을 하고 하우스 보트
ⓒ 최오균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문제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모두 사소한 일들로 서서히 잊히게 마련입니다. 그 찰나의 사소한 일을 참지못해 인간은 여러가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인생의 어떤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낯선 여행지에서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를 접하다 보면 적어도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순간을 모면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아내가 그렇습니다. 의사의 진달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그 암울한 시간들을 아내는 잊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아내가 기대는 유일한 작은 신인지도 모릅니다. 

코친을 출발한 버스는 열 두 명의 여행자들을 태우고 알레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함께한 여행자들을 살펴보니 참으로 흥미로운 점이 있군요. 한 팀은 할머니와 딸, 그리고 손자 이렇게 3대가 함께 왔고, 또 다른 한 팀은 올케와 시누이가 사이좋게 여행을 왔군요. 아주 보기 드문, 그리고 보기에 좋은 동반자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팀은 전주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은퇴를 한 네 분이 함께 오셨습니다. 

나이 대를 보니 70대가 다섯 분, 60대가 여섯 분, 그리고 20대가 한 분이군요. 모두가 여행께나 하신 분들 같습니다. 적어도 남인도 여행을 올 정도이면 북인도는 이미 다녀오신 전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유일한 20대 아가씨를 모두 '아가씨'라고 불렀습니다. 요즈음 같은 시절에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이렇게 여행을 떠나 온 20대 아가씨가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거기에 유머와 재치가 넘쳐흐르는 현지 인도인 가이드 샌딥(20)이 함께 하여 우리는 마치 한 가족처럼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알레피로 가는 버스에서 나는 다시 로이의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차창에 문득문득 스쳐 자나가는 호수와 야자수가 운치를 한껏 더해주고 있습니다. 코친에서 그 유명하다는 카타칼리 공연을 보지 못하고 왔지만, 나는 곧 백워터 수로와 우거진 야자수 풍경에 흠뻑 빠지고 있었습니다. 하우스 보트들이 수로를 따라 통통거리며 지나가기도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보트를 타고 이 수로를 따라 아룬다티 로이의 고향인 아예메넴까지 문학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코친을 출발한 지 약 2시간 만에 우리는 드디어 인도 속의 천국 알레피에 도착했습니다. 어느 좁은 골목에 정차를 한 버스에서 내리자 호수는 보이지 않고 가무잡잡한 남인도의 건장한 사내들 세 명이 버스로 다가와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단단한 갈색 피부, 동그란 눈동자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그들은 버스에서 우리들의 여행 가방을 챙겨들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맑은 수로 위에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 환성이 절로 나와 

코코넛 나무가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운 골목길, 그들의 뒤를 따라가자 놀랍게도 꿈에서나 보았음직한 아름다운 강과 수로 그리고 하우스 보트들이 나타났습니다.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훑고 지나갑니다.  

"와아, 강이다!"
"저기~ 배 좀 봐요!"
"배 위에 집을 지어 놓았네요!"
"여기가 낙원이네요!"

무더운 날씨와 버스여행에 지친 동반자들은 저마다 한마디식 환성을 지르며 맑은 수로 위에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자 갑자기 기운들이 솟아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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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스 보트 선상 모습
ⓒ 최오균

우리는 강가에 정박한 두 개의 하우스 보트에 올라탔습니다. 오늘 밤은 이곳 하우스 보트에서 묵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탈 하우스 보트 바로 옆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있군요. 많은 사람들의 망자를 보내는 마지막 고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영원히 살 것 같지만, 반드시 그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망자의 영혼을 달래는 주문을 듣게되니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고 흐르는 강가에 하나로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지
잃어버린 시간은 없다고
꿈이 살며시 가버리기 전에 
꿈을 이루라고
시간을 죽이고 있으면 
꿈을 잃고 나중에는
정신까지 잃게 된다고.('작은 것들의 신'들 중에서)

하우스보트에 오른 순간, 나는 '작은 것들의 신'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시의 내용이 지금 우리 삶의 순간에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나이에 봉착을 하게되지만, 살아있는 순간은 이렇게 또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우스 보트에 여장이 푸니 배 안에 낭만이 가득 차오르고 있군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13일까지 남인도 여행을 한 내용입니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2014년 3월 20일 목요일

'비폭력의 나라' 인도, 성폭력 국가로 낙인 찍힌 까닭은?

2012년 버스 집단 성폭행 등 잇단 충격적 사건으로 시끌
"문화현상보단 개별적 범죄"
인구 10만명 당 성폭행 1.8건 선진국이나 한국보다 적어
서방 언론 편향 보도도 영향
가부장 문화 강하게 남아있는 델리의 성폭력은 위험 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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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3일 판사는 네 명의 피고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법정 밖에서 그 소식을 들은 군중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사형을 선고 받은 이들은 노선버스로 오인하고 남자친구와 함께 탑승한 한 젊은 여성을 달리는 전세버스에서 집단 성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었다. 2012년 12월 16일 밤 인도 수도 델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중범죄를 저지른 여섯 명의 범인 중 한 명인 버스기사는 이미 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고(살해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유일한 미성년자는 법정최고형인 3년의 소년원 송치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남은 네 명이 살인죄 등을 적용 받아 이날 형을 언도 받은 것이다.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범죄가 발생한 그날 밤에서 사형판결이 나오기까진 딱 9개월이 걸렸다. 인도의 사법체계에서 보기 드문 급행판결이었다.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된 덕분이었다.

버스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사건이 알려지자 흉악한 범죄와 여성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와 항의집회가 수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벌어졌다. 경찰은 분노한 시민들의 집회와 항의가 과격해지자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쏘았고,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부분적인 계엄과 지하철 운행까지 막았다. 곳곳에서 침묵시위와 촛불모임도 이어졌다.

곧 다가온 2013 새해는 우울하게 시작됐다. 새해맞이 정부행사는 물론, 호텔과 클럽에서 열릴 예정인 사적 모임도 줄줄이 취소됐다. 엄격한 법집행과 여성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여러 형태로 지속되었다. 해외에서도 충격적인 범죄행위를 비난하고 피해자에게 애도를 표시하는 목소리가 컸다. 비인간적인 범죄와 마지막까지 싸운 피해자에게 '용감한 여성상'도 추서됐다. 한국에서도 이 사건은 한동안 언론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렇게 1년을 넘기는 동안 인도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지방정부들은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치를 속속 발표했다. 성범죄전담부서를 만들었고, 피해여성의 편의를 위해 여성경찰관을 배치했다. 성폭력을 중범죄로 다루고,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약속도 나왔다. 성폭행의 형량을 최대 20년까지 늘리는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상태가 되면 가해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처벌도 강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결과는 많은 인도인이 여성의 안전과 위상을 재인식하게 된 점이다.

인도는 성폭력이 많은 나라?

이제 인도는 여성의 안전지대가 되었을까? 그렇진 않다. 크고 작은 성범죄가 지금도 대륙의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불미스런 뉴스가 외신을 타고 종종 전해진다. 인도를 전공한 인연으로 지난 1년 간 인도의 성범죄와 관련하여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인도에 여행이나 출장을 가는 여성을 둔 가족들은 인도가 위험하지 않느냐고 걱정했다. 그들은 인도의 어떤 문화적 요인이 성폭력을 빈발하게 하는가, 왜 성폭행이 전염병처럼 유행하는가를 궁금하게 여긴다.

인도는 '지구상에서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통계는 참고사항이지만, 인도에서 수치로 드러나는 인구 대비 성범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통계를 보면, 2010년 인구 10만 명당 성폭행은 인도가 1.8건으로 앞에서 세 번째인 한국(36.9건)에 비해 훨씬 적다. 물론 인도의 인구가 많으니 절대적인 발생건수는 한국을 앞지른다. 수치와 다르게 인도에서 성범죄가 빈발한다고 느끼는 것은 언론의 보도가 많아서 더 많이 알려지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성범죄율은 미국과 영국 등 이른바 선진국이 더 높다. 그러나 성폭행이 많다고 미국 여행을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 언론이 영국에서 발생한 성폭행사건을 자주 다루지도 않는다. 인도의 성폭력이 부각되는 것은 편견의 탓도 있다. 범죄는 후진국에서 많이 생기고 그래서 인도는 뭔가 위험하다는 오래된 인식이 저변에 있는 것이다. 델리의 집단성폭행사건이 그런 인상을 더 짙게 만들었다.

성비 불균형, 경제 불평등

인도의 성폭행 사건은 문화현상이나 전염병이라기보다 유형이 다른 개별범죄로 봐야 한다.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에서 소외된 남성이 많은 것이 주요 원인이다. 돈이 없어 짝을 찾지 못하거나 여성이 부족해서 결혼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다. 인도는 18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치러진 인구조사에서 늘 여성인구가 부족했다. 2011년에도 10년 전처럼 여성이 4,000만명 가량 적었다. 이런 인구구조에서는 성적으로 좌절한 사람들이 성범죄의 유혹에 취약하다고 지목된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많은 수도에서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건 그래서다. 2010년 조사에서 델리는 성희롱과 성추행 등 여성상대범죄가 가장 많은 도시로 꼽혔다. 응답한 델리 거주 여성의 60%가 공적장소에서 성적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수도에서 7년 간 유학한 나도 그랬다. 배우지 못하고 기술이 없어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들이 많이 살고, 가진 자에 대한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성범죄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2012년 집단성폭행을 저지른 범인들도 슬럼에 살거나 직업이 없는 청년들이었다.

가부장 문화도 한몫

가부장 문화와 전통도 성범죄에 한몫을 한다. 비폭력으로 유명한 인도에서 여성에게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남아선호사상과 여성인구의 부족, 여성의 낮은 교육률, 높은 여아사망률, 결혼지참금문제로 희생되는 여성, 매 맞는 여성의 높은 비율, 홀어미에 대한 부당한 대우,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진출 등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많다. 이러한 남성우월주의와 여성경시가 성적 폭력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지난 2월 동부지역의 20세 부족민여성이 같은 마을에 사는 십여 명의 남자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그렇다. 성적인 집단유린은 이웃마을의 다른 종교를 믿는 남성과 만나는 여성을 응징하기 위해 마을 원로들이 내린 판결의 결과였다. 아직도 여성의 몸이 가족과 집단에 속하고, 그래서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남성중심문화는 12세 여아가 두 명의 경찰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경찰관들은 아이와 합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했고, 판사는 어린 피해자에게 적극적으로 반항했냐고 물었다. 경찰의 보복이 무서운 이웃들은 피해자의 품행이 조신하지 않았다고 증언해 가해자들이 무죄판결을 받도록 도왔다. 지금도 성폭행 피해자들은 자신의 행실이 나쁘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가해자의 형량이 많지 않고 처벌 비율이 낮은 것도 가부장 문화의 산물이다.

남성위주로 생산되고 유포되는 성관련물이 성범죄를 야기한다는 점은 인도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누구나 쉽게 접하는 성과 관련된 각종 동영상, 게임, 포르노영화, 야한 잡지, 볼리우드영화의 선정적인 장면은 성에 대한 남성의 인식을 왜곡시킨다. 특히 외국여성들이 프리섹스를 즐긴다고 오해하고 집적대는 인도 남성이 적지 않다.

가장 안전해야 할 수도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은 것도 가부장 문화 탓이다. 델리는 결혼지참금과 관련된 범죄가 연간 1,000여 건이 넘을 정도다. 이유는 파키스탄과 분단될 때 이주한 피난민들과 각 지방에서 상경한 이질적 집단들이 모여 사는 탓에 '힘'과 '강한 남자'를 추구하는 성향이 짙기 때문이다. 통계를 보면 수도 델리처럼 가부장 문화가 강한 지역일수록 여성인구의 비율이 낮고 성범죄율이 높다.

'눈에는 눈'보다 여성을 존중해야

요즘은 인도에서도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크게 늘었다. 뭄바이 등 대도시에서는 '하의실종' 옷차림을 한 여성들도 만날 수 있다. 일부 남성들은 성희롱과 성폭력이 많아진 이유를 여성들의 선정적인 차림과 사회활동 증가에서 찾으며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인도에서는 남성의 욕망을 당연시하는 문화를 여성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는 걸 알게 한다.

아무리 많은 걸 말하고 많은 법을 만들어도 인도에서 성폭력이 근절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많은 남성들이 다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폭행 사건에 분노하는 대규모 시위나 집회에 인도 남성들의 참여가 많은 것은 희망적인 징후다. 그런 외침이 모여 역사가 바뀌지 않았는가. 우리도 남의 눈의 티끌만 언급하기보다 우리 안의 들보를 봐야 한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딸, 내 누이는 다 여성이다. 세상의 절반인 그들이 안전해야 좋은 세상인 건 분명하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2014년 3월 17일 월요일

인도 뉴델리의 쿠트브 미나르 탑




지난 12일 인도 뉴델리의 쿠트브 미나르(Qutb Minar) 탑을 찾고 있는 인도인들. 쿠트브 미나르 탑은 무슬림이 인도 정복을 기념해 세운 탑이다. 

1193년 건립을 시작, 1368년에 완공됐다. 

높이 72.5m, 기단부 지름은 14.32m이지만 정상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져 정상부에서는 지름이 2.75m로 작아진다. 

쿠트브 미나르 유적지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기사 출처 : 뉴스1>

유적지 견학하는 인도 학생들

쿠트브 미나르 © News1 최종일 기자

지난 12일 인도 뉴델리의 쿠트브 미나르(Qutb Minar) 유적지를 인도 학생들이 견학하고 있다. 

쿠트브 미나르 유적지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기사 출처 : 뉴스1>

인도 뉴델리의 쿠트브 미나르 유적지

쿠트브 미나르 © News1 최종일 기자

지난 12일 인도 뉴델리의 쿠트브 미나르(Qutb Minar) 유적지에서 인도 소녀들이 그늘에서 햇빛을 피하고 있다. 

쿠트브 미나르 유적지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기사 출처 : 뉴스1>

인도 자이푸르의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 © News1 최종일 기자

지난 8일 인도 라자스탄주(州)의 주도 자이푸르에 있는 하와마할(hawa mahal) 앞으로 인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1799년 왕족 여인들이 일상생활과 시내의 행열을 지켜보도록 하기 위해 지어졌다. 

일명 '바람의 궁전'이라고 불린다.
<기사 출처 : 뉴스1>

인도 타지마할, 사랑의 무덤

타지마할 © News1 최종일 기자

지난 11일 일출 때의 타지마할 측면의 모습. 

타지마할은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이다.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사망한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위해 1631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653년에 완공했다.
<기사 출처 : 뉴스1>

인도의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

하와마할 © News1 최종일 기자

지난 8일 인도 라자스탄주(州)의 주도 자이푸르에 있는 하와마할(hawa mahal). 1799년 왕족 여인들이 일상생활과 시내의 행열을 지켜보도록 하기 위해 지어졌다. 

일명 '바람의 궁전'이라고 불린다.
<기사 출처 : 뉴스1>